하나님을 아는 지식

제임스 패커 지음

IVP



이 책은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두꺼운 신앙 고전입니다. 영수 형에게 선물받고 나서 2년 전에 한 번 읽었는데, 이제 재독하면서 각 장마다 간략히 요약하고 제 생각을 적으려고 합니다. 총 22장으로 이뤄져있으니 하루에 1장씩 정리한다고 해도 최소 한달은 걸릴 것 같습니다. 좀 막막하지만, 한편으로 설레입니다. 작디 작은 피조물인 제가 창조주 하나님을 주제로 쓰여진 책을 요약하면서 정리한다는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까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분량이 너무 많아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각 장당 7줄 정도로 요약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독후감을 쓸 것입니다. 



제1부. 여호와를 알라


1. 하나님에 대한 연구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녀들이 연구해야 할 가장 합당한 주제는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즉,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는 것만큼 제 생애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제가 대학원에서 연구하고 있는 영상처리는 부전공 정도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연구하는 일이 비실제적이며 삶과는 무관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 또한 성취에 취해있을 때는 그렇게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는 채하고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삶을 전혀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연구하는 목적이 단순히 지식을 늘리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불신자들도 하나님에 대해 단편적이고 왜곡된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알고 섬기기 위한 것이 궁극적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2.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많은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남이 하나님에 대해 한 이야기를 들어서 아는 것과 직접 아는 것은 다릅니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있을까요?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을 위한 엄청난 열정을 갖고 있어,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세번째로 자신의 이익과 배치되고 생명까지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위한 담대함을 드러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안에서 큰 만족을 얻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원한다면 마음을 다해서 예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3. 아는 것과 아신 바 되신 것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이 일에는 우리의 지성과 의지와 감정을 필요로 합니다. 여자친구와 교제를 하면서 조금이나마 이 뜻을 알 것만도 같습니다. 사랑의 감정없이 지식적으로 이 사람에 대해 아는 것만으로는 교제를 나눌 수가 없습니다. 또 이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도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정말로 은혜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귀고자 할 때 상대방이 나에게 자신에 대해서 알도록 허용해 준 만큼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열어 보여주셔야만 비로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찾아야 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먼저 아시고 나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여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4. 오직 참되신 하나님

십계명 중 제2계명은 어떤 형상이나 그림을 가지고 하나님을 숭배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만든 하나님의 형상은 부득이하게 하나님의 참 모습을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십계명의 제1계명인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와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다른 신이 아닌 하나님을 섬길 때도 어떤 형상을 이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제 2계명은 마음 속으로도 하나님에 대해 어떤 형상을 만들지 않을 것을 요구합니다. 마음 속으로 우리가 만들어놓은 형상 또한 하나님의 참 모습을 다 담을 수 없고 왜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한 경우에는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다른 신을 만들어서 믿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불가해한 하나님의 속성을 겸손히 받아들이고, 단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시다. 


5. 성육신하신 하나님

예수님은 완전하게 인간이셨고, 마찬가지로 완전하게 신적인 존재이십니다. 인간을 만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약 2천년전에 인간이 되셨습니다. 즉, 성육신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예수님께서 하나님 이하의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신성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신적 능력을 억제하셨습니다.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서 인간을 만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 손에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가난해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의 진정한 정신입니다. 자신이 부요해지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세상의 기본적 원리와 완전히 배치됩니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성육신의 정신을 기억해야겠습니다. 


6. 그가 증언하실 것이요

기독교에서 삼위일체는 매우 중요한 교리입니다. 삼위일체는 곧 세 위격이며 한 분이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성자는 성부의 뜻을 행하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뜻을 행합니다. 성령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사역이 중요했던 것만큼 역시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에 비해 성령의 위격과 사역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약 성령의 사역이 없다면, 복음도 신약성경도 없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믿음도 중생도 없을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성령이 계시지 않다면,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성령님은 이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깨달을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제2부. 네 하나님을 보라

7.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

성경이 씌여진 시대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시간, 공간, 문화적으로 2017년 지금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와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성경이 지금 우리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시고, 성격이 조금도 변하시지도 않고, 말씀하신 것을 철회하시지도 않고,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도 변하지 않으십니다. 변덕스러운 우리와는 많이 다른 분이시죠. 이러한 하나님의 불변성 덕분에 여전히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친밀히 교제를 해나갈 수 있는지 충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8. 하나님의 위엄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입니다. 오늘날에는 하나님이 인격적이신 분이라는 것을 너무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에 대해 뭔가 연약하고 애처로운 인상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격적이면서도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주에 있는 어떤 존재도 그분과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좀 더 와닿게 말해서, 지금 전 세계에서 힘이 있어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 시진핑 주석도, 또 가까이 있는 우리들의 직장, 학교의 상관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또 호날두, 메시, 손흥민과 같은 스포츠 스타들도 그분의 작디작은 피조물일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제대로 인지하고 경배해야합니다. 

9. 지혜로우신 하나님 

진정한 지혜는 우리의 지성과 영리함이 올바른 목적을 위해서 사용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그들만큼 똑똑한 사람이 어디 더 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지혜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성을 올바른 일에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하나님은 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올바른 일이 무엇인지 아시고, 완전한 능력으로 목적을 이루십니다. 특히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하신 원래의 목적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십니다.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의 성화와 각자에게 주어진 사역의 완수를 위해 하나님의 주권 아래 허용됩니다. 때론 우리의 성장을 위해 전혀 달갑지 않은 일들도 일어납니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지혜를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10. 하나님의 지혜와 우리의 지혜

윗 장에서 말하듯이 하나님은 지혜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 지혜를 피조물들과 공유하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알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조건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지혜로우신 분임을 인정하고, 그분의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며 사는 것입니다. 어떤 분야에서 권위있다고 인정받는 사람의 책을 읽고 우리 삶에 적용해도 유익이 있는데, 완전한 권위와 지혜를 가지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면 당연히 더 큰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나누어주신다고 하는 것이 우리가 모든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한계와 현실을 직시하고, 하나님을 겸손히 의지하며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11. 주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통치하시기 위해서, 또 그들과 교제하기 위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그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성경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에 귀기울일 때 그분의 뜻대로 살 수 있고, 그분과 친밀하게 교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때문도 있지만 그 말씀이 다 옳기 때문입니다. 언론을 통해서 듣는 이야기는 틀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공부하는 이론들도 틀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전적으로 옳습니다. 그 말씀은 우리가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해줍니다. 말씀의 테두리를 벗어나 자유(?)롭게 사는 것은 우리의 삶을 망가뜨립니다. 저도 자주 느끼는 바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고 애쓰는 바로 그만큼만 진정 인간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는 저자의 말을 기억합시다. 



(존댓말을 쓰니 뭔가 다른 사람에게 권고하는 글이 되는 것 같다. 사실 나에게 해야하는 말들이므로 반말을 쓰자.)



12.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만큼 잘못 받아들여지는 말도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사랑이시면 왜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허락하시냐고 퉁명스럽게 질문한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지만, 동시에 불의를 참지 않으시고 심판하시는 분이시다는 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질문이 나오는 것 같다. 하나님은 죄를 분명히 심판하신다. 그 가장 큰 증거가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인 예수를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게 하신 것이다. 죄를 그냥 넘어가시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는 분이시라면 그러실 이유가 전혀 없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고 다 멸망시키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랑받을 만한 행동을 조금도 하지 않은 우리를 사랑하기로 선택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징계하시기도 격려하시기도 하신다. 자녀가 제멋대로 행동해도 혼내지도 않고 오냐오냐 키우는 부모는 자식을 제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13. 하나님의 은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사람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구원해주신다는 것을 은혜라고 여기지 않는다. 자신이 죽어야 마땅한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다. 그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은 단 한 사람도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기로 선택하셨다. 하나님은 용서를 하셔야만 하는 분이 아니시다. 그렇지만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용서를 받아들이는 자들을 용서하신다. 이것이 바로 은혜다. 우리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어주셨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용서를 받았듯이, 하나님의 은혜로 끝까지 성화를 이루어갈 것이다. 은혜가 방종을 조장한다는 우려가 있는데, 은혜를 아는 사람은 결코 방종에 빠지지 않는다. 은혜를 베푼 대상에게 기쁨을 주고 싶기 때문에,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선한 일에 몰두하게 된다. 


14. 심판자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의 심판자시다. 우리의 행위를 보시고 선은 선으로, 악은 악으로 보답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심판자되신다는 사실을 부정하려고 할 때가 많다. 그저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사랑해주시고,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으로 알고 싶다. 하지만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동시에 정의로우신 분이다. 불의를 용납하지 않으신다. 나쁜 사람들이 잘 살고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이생에서나 내세에서나 정확하게 응보하실 것이다. 따라서 장차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며 하루하루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 이 믿음의 기초 위에 선한 생활 방식을 세워나가야 한다. 구원을 베푸신 이유 중에 하나가 선한 일을 하는 존재가 되게 하시기 위함이다. 따라서 선한 행위는 구원에 대한 보답이지 조건은 아니다. 


15.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은 죄와 악에 대해 분노하신다. 기준 없이 제멋대로 분노를 표출하는 우리 인간과 달리, 하나님은 분노가 필요한 곳에서만 분노하신다. 하나님의 사법 처리는 더함과 덜함도 없다. 딱 받아야 마땅한 정도로 보응하신다. 또한 하나님의 진노를 받기로 스스로 선택한 자들에게 진노하신다. 하나님이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성경과 양심을 통해 분명히 알려주셨다. 그런데 대부분 우리는 사망의 길을 스스로 선택해왔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다. 도덕적으로 대단히 훌륭해 보이는 천사 같은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가 남몰래 하는 행동들, 생각들을 잠잠히 생각해보면 사실 살인범들, 강간범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다행히도 이런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하셨다. 바로 이러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셔서 우리의 죄를 이미 해결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16. 인자하심과 준엄하심

하나님은 인자하시면서도 준엄하신 분이다. 하나님은 인자하신 분이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햇빛과 공기와 물과 돈과 음식과 재능과 건강 등을 허락하신다. 이것들은 예수님을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상관없이 동일하게 주어진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이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구원을 베푸신다. 준엄하심이란 이러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무시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에게서 그 인자하심을 거둬가시는 것을 의미한다. 주님이 우리에게 허락해주시던 것들 중에 하나씩 가져가시면서 삶에 어려움이 생긴다. 재산을 잃는다던가, 건강을 잃는다던가.. 이 준엄하심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금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하나님은 결코 성급하게 징계를 내리시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오래참으심과 징계하심에 대해 마땅히 감사해야 한다. 


17. 질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다. 여기서 질투는 사랑의 관계를 보호하려는 열심이자 그것이 깨어졌을 때 복수하려는 열심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결혼한 상태와 마찬가지인 언약 관계에 있다. 하나님은 이 언약 관계를 지키기기 원하시고,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마땅한 사랑을 드리지 않고 한 눈을 팔 때 하나님은 질투하시고 복수하신다. 배타성이야말로 결혼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내 아내가 될 희가 내가 자신보다 일이나 다른 취미활동에 열심을 보일 때 질투하고 속상해하는 것은 이러한 사랑의 속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열심을 내야한다.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기쁘시게 할지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제3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18. 복음의 핵심

복음의 핵심은 화목(propitiation)이다.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한 관계가 될 수 있다는 소식이 복음이다. 그 말은 곧 하나님과 사람들이 화목하지 않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밥먹듯이 짓는 죄들이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를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함과 모순되는 것에 대해 거룩한 혐오감을 느끼시고 그에 대해 진노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진노의 대상인 것이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노하신다는 것은 피할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없는 무력하고도 절망적인 상황인 것이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신 분이기에 분명하고도 정확하게 처벌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자신의 아들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함으로 우리의 죄를 모두 처벌하셨다. 우리가 받아야할 그 처벌을 예수님이 받으셨다. 그 사실을 믿는 자가 하나님과의 화목함을 영원히 누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진노 속에 있는 것이다. 


19.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사람이다.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아주 멋진 육신의 아버지를 허락해주셨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더 놀랍고도 감사한 일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어주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허락해주신 특권이다.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다. 온 우주에서 가장 사랑이 많으시고 능력이 많으시고 부유하시고 정의로우신 분을 아버지로 모신다는 것만큼 영광스러운 일은 없다. 하나님은 반역자이자 망나니와 같은 우리를 용서해주신 거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아들로 받아주시고 아들답게 살아가게 도와주신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나와 그리스도인들은 아버지를 닮아가고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도록 마음을 다해야 한다. 단순히 구원받고자 선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에 걸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 


20. 우리의 인도자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 대해 특별한 계획을 갖고 계시고, 그 계획을 알리시기 위해 우리와 의사소통하시고,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 인도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시는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싫어하시는 것을 알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기호와 성향에 따라 결정하도록 인도하신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초월해서가 아니라 그 말씀의 바운더리 안에서 인도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 말씀을 자주 그리고 깊이 묵상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기 전에 말씀을 기준으로 선택의 결과에 대해 장기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조언도 잘 들어야 한다. 때로는 급하게 선택하지 말고 기다려야할 때도 있다. 설령 잘못된 길을 선택하고 갔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회복할 기회를 주시고 그것에서부터 선을 끌어내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하게 인도하시는 좋은 분이시다. 


21. 내적 시련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은 전혀 어려움이 없는 핑크빛의 삶을 약속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와 항상 동행하여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모든 필요를 채워주신다. 또 불가능했던 일들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신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죄와 사탄과의 끝없는 싸움에 놓여있고, 날마다 단련 가운데 거하고, 주기적으로 어둠에 거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에 우리가 노출되게 하신다. 그렇게 하시는 목적은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장하기 원하신다. 우리는 어려움을 통해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더 닮아가게 하신다. 주구장창 성공만 해 온 사람만큼 연약한 사람도 없다. 


22. 하나님의 충족성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시는 분이시다. 나의 편이시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시는 분이시다. 또한 우리가 과거에 어떤 실수를 했고, 미래에 하게 되더라도 우리를 의롭다고 해주신 그 지위는 박탈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하나님은 정말 나에게,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 충분하신 분이시다. 더이상 다른 신을 섬길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라는 것을 내가 진짜로 알고 믿는가이다. 정말 내 삶의 행동들은 이 사실들을 알고 있는 사람의 행동일까? 아니면 불신가운데 여전히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나를 채울 수 있는 것처럼 여기저기 서성이는가? 하나님이면 충분하다!  



▶ 전체 감상문


이 책의 서문에 있는 예화가 참 맘에 든다. 여행자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지점에 사는 사람들과 여행자에 대한 이야기다. 여행자들을 많이 접한 사람들은 여행지에 어떤 일들이 있고, 어떤 볼거리가 있고, 어떤 코스가 있는지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구경꾼일 뿐이다. 여행을 직접 가서 경험해보지 않고는 결코 알 수 없다. 책으로 우리가 다양한 세상을 접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가는 것과는 천차만별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안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 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나름 빠삭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믿고 그 길을 걸어가는 신자들은 구경꾼들이 이론적으로 아는 것을 넘어 실제적으로 안다. 나도 그 길을 걸어가는 중인 여행자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면서 겪는 기쁨, 확신, 평안, 고난, 수고를 실제적으로 안다. 하지만 동시에 매우 희미하게 안다. 이 길에 들어서지 않은 사람들에 비하면 매우 잘 알지만 말이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해서 말씀으로, 삶으로 하나님을 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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