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섹스, 권력
리처드 포스터 지음
김영호 옮김
두란노


▶ 독후감

인간이 마주할 수 있는 가장 큰 유혹들을 세 단어로 정리한다면 아마 이것들일 것이다. 돈, 섹스, 권력. 
이것들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지구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가지를 삶의 목표로 두고 살아간다. 

"난 돈을 많이 벌거야! 돈이 있으면 뭐든 할 수 있거든. 예쁘고 멋진 배우자를 만날 수 있어! 꼭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멋진 애인을 계속해서 가질 수 있어. 해외의 유명 축구선수들처럼 말이야. 또한 권력을 많이 가져서 많은 사람들을 부리면서 살 거야! 내 한 마디에 많은 사람들이 움직인다고 생각해봐. 멋지지 않아?" 

그래서 돈, 섹스, 권력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으로 이것들을 추구하고 있다면 크게 잘못된 것이다. 돈, 섹스, 권력은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이웃들의 필요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잘 사용되어야 한다. 다른 이웃의 삶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혹자는 "내가 내 돈을 사용하는데 뭔 상관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돈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아야한다. 내 노력으로 번 것 같지만 하나님이 내게 잘 사용하라고 맡기신 것이다. 성은 가정 안에서 아름답게 활용되어야 한다. 섹스는 아이를 갖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부의 즐거움을 위해 주신 것이기도 하다. 만약 결혼 밖에서 이 성이 활용된다면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와 고통을 안겨주게 된다. 혼전순결을 지킨다는 것은 남의 남편 또는 아내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이 이루게 될 가정을 보호해주는 것이다. 높은 지위에 올라간다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을 갖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책임은 생각하지 않고 누릴 혜택만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다. 제대로 섬길 생각이 없으면 결코 높은 자리를 탐해서는 안된다. 

이 책은 돈, 섹스, 권력에 대한 옳바른 인식을 갖도록 도와줄 것이다. 읽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다. 


▶ 좋은 구절들 정리


책을 읽다가 좋은 구절들을 하나 하나 기록해보았다. 참 공감되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구절들이다. 책을 읽으면 좋겠지만 어렵다면 아래의 구절들만이라도 한 번 꼭 읽어보자. 큰 유익이 있을 것이다.  


돈과 성과 권력에 관계를 맺고 살면서도 올바르게 살아간다는 것은 삶을 성스럽게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12 

<백치>, 도스또예프스키

그는 화려함이나 부에 대해서 뿐 아니라 대중의 존경에 대해서조차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단지 그는 진실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있었다. 


15

<소매상인의 소명>, Richard Steele

당신이 하나님의 현존과 복주심을 가장 확신있게 기대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상점 안에서이다. 


27

마틴 루터

"세 가지의 회심이 필요하다. 가슴의 회심, 정신의 회심, 그리고 돈지갑의 회심이다."


34

디트리히 본회퍼

"우리의 마음에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하나의 헌신만을 위한 방이 있으며 우리는 한 주인께만 매어 달릴 수 있을 뿐이다."


40

돈은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보다 커다란 선을 위해 사용될 수 있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정복되고 구속되어야 할 정사와 권세들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42

의식적인 의지적 행동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부유하다는 것을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보다 큰 그림을 보자. 우리 자신들과 같은 다른 사람들을 우리와 비교함으로써 언제나 상대적인 빈곤을 주장하기 보다는 세계의 시민이 되어 온 인류와의 관계에서 우리 자신을 보자. 


45

고든 코스비

"돈을 내어 주는 것은 우리를 억누르는 어두운 세력들에 대해 승리하는 것이다."


54

우리가 돈을 내어줄 때 우리는 자기 중심적인 자아를 조금 더 해방시키는 것이며 우리의 거짓된 안전을 조금 더 풀어주는 것이다. 존 웨슬레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만일 당신이 지옥의 저주를 피하고 싶거든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내어주라.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당신의 구원을 위하여 가룟 유다의 희망 이상의 희망을 가질 수가 없다."


6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눅16:9). 요약하면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돈이 없어질 때에 - 돈은 없어질 것이다 - 우리가 계속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돈을 사용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같은 말씀 가운데서 두 가지 사실이 우리에게 충격을 준다. 첫째는 불의한 것이라는 것이며 둘째는 그 재물을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68 

우리들 대부분은 돈으로 하여금 우리가 내리는 결정들에 독재를 부리도록 허락을 하고 있다. 즉 어떠한 직업을 가질 것인지 하는 것들을 돈이 결정한다. 

만일 아내가 나에게 "우리 이것, 저것을 합시다"라고 말하는데 내가 "우리는 돈이 그렇게 많지 안찮아!"라고 불평을 한다고 가정을 해보자. 어떻게 되었는가? 돈이 결정하였다. 보다시피 나는 "여보, 우리 같이 기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아봅시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아니고 돈이 결정을 내린 것이다. 돈이 나의 주인이다. 따라서 나는 돈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76

성 베네딕트는 "오라 에트 라보라"(Ora et labora) 즉 "기도하고 일하라"는 말을 만들어 냄으로써 경건한 삶과 일하는 삶이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노동은 영적인 삶에 필수적인 것이다. 그리고 영적인 삶은 노동에 의미를 부여해 준다. 


79

근로자들은 자신들이 이용당하고 있으며 비인간화되어가고 있다고 느끼는 적이 굉장히 잦으며, 또한 대부분이 사실이다. 효율성의 증대를 위하여 행해지고 있는 기계화현상은 전체 기업을 비인격화 시킬 수 있다. 


80

근로자들은 사용자(고용주, 관리자)의 소외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 지도적 위치에서 책임있는 자리에 있게 되면 여러모로 소외되게 마련이다. 지도적 위치에 있으므로 치러야 할 댓가가 비판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받는 상처는 작은 것이 아니다. 


83

사업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여섯 가지 원칙

1.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노동의 선한 본질과 필요성을 확언한다.

2.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인간의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일은 인정하지만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일은 거부한다.

3.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인간의 가치가 경제적 가치보다 우선함을 단언한다.

4.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노사관계에서 서로 상대방의 위치를 고려하여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음을 선언한다.

5.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쓸데없는 것들을 사고파는 행위를 거부한다. 

6.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우리들의 이웃을 속이는 행위를 거부한다. 


84

이제는 나와 함께 베들레헴에 있는 말구유에 가 보자. 그날의 경배자들을 주의깊게 살펴 보라. 남루한 목자들과 제왕적 위엄이 있는 동방의 박사들. 여기에서 우리는 빈부가 함께 말구유 앞에 나아온 것을 본다. 왕에게나 주어짐직한 황금, 유향 그리고 몰약이 메시야이신 아기 왕께 경배할 때에 거리낌 없이 드려진다. 생활에 필요한 돈이라고는 한 푼도 벌 수 없던 목자들은 그들의 현존과 경배를 드린다. 양 편 모두 부름을 받았다. 가난한 자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 부자들 중에서도 가장 부자. 둘 다 와서, 둘 다 무릎을 꿇고, 둘 다 경배를 드리는 것이다. 


88

만일 우리가 성경의 증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하면, 돈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 중의 하나는 주어서 없애는 일일 것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주는 것이 물질이라는 우상을 정복하는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주는 행위는 장사와 경쟁의 세계를 걸려 넘어지게 만든다. 그리스도의 뜻을 위하여 돈을 이기는 것이다. 


90 

한가지 주의할 것은 어떤 사람들의 경우, 그들이 만약 진실로 하나님께 신실하고자 한다면 그들이 지금 행하는 것보다 조금은 덜 바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자녀들이나 부모, 아니면 다른 부양 가족들 심지어는 당신 자신을 보다 잘 돌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종교적 구실을 핑계로 자신의 책임을 면하지 말라. 


93

기껍고 즐거운 마음으로 힘을 구하지 말고 주라. 우리는 통제하고, 관리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필요가 없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99

슈바이쳐

"어린이를 가르치는 데는 단 3가지의 방법만이 있을 뿐이다. 첫째도 모범이요, 둘째도 모범이요, 셋째도 모범이다."

만일에 우리가 돈을 사랑하는 데서 자유롭게 된다면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될 것이다. 돈에 대해서 우리가 자율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염려하게 되면, 그들에게 근심과 염려를 가르치게 될 것이다.


101 

우리들이 아이들에게 전생애를 통하여 남용 없는 선용(use without abuse)을 가르쳐 줄 의무를 지니게끔 된 것은 다름아닌 바로 이 점 때문임이 틀림없다. 우리는 몸소 실천함으로써,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하나 보았으면 이제 끌 줄도 알아야 하며, 건강을 위해 필요한 것은 먹고 아니면 먹지 않으며, 좋은 음악을 즐기는가 하면 침묵을 경험할 줄도 알도록 본을 보여야 한다. 


113

음욕은 그릇된 성을 창출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관계성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음욕은 상대방을 대상으로, 물건으로, 비인격적 존재로 바꾸어 버린다. 예수님께서는 음욕이 성을 값싸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이를 정죄하셨다. 음욕은 성을 창조시의 가치보다 못하게 한다. 예수님께 있어서 성은 너무나 선하고 고상하고 거룩한 것이어서 값싼 생각으로 취급하실 수가 없었다. 


138

당신도 알고 있다시피, 악한 사람들이 악을 행할 때는 바로 그들이 하고자 하는 바를 행하는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악을 행할 때는 자신들이 결코 원치 않는 바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덧붙인 대로,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롬 7:15). 우리가 이러한 상황을 당하게 되면 믿음으로 고백하게 된다. "이것을 행하는 자는 제가 아니요 제 안에 있는 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안에서 죄가 사하여질 것입니다." 


152

결혼에 있어서 기독교적인 기초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스도의 뜻에 따른 결혼의 원칙은, 우리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야 하며,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이바지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낭만적 사랑과 성적 만족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은 의심할 나위도 없다. 이들, 낭만적 사랑과 성적 희열은 모두가 하나님의 창조의 소산이며, 양자 모두 한정되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들을 떠나서는 삶을 영위할 수가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낭만과 성, 이 양자는 모두 결혼에 앞서서 심각히 고려해야 할 요소이며, 어떤 개인과 결혼을 해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결혼의 유일한 기초로 군림할 수는 없다. 


158

노만 로벤츠 박사

"부정을 막는 데는 생기있고 흥미로운 결혼생활이 특효다." 결혼 생활 가운데서 우리가 신비와 흥분 그리고 모든 매력을 유지하려고 하는 자리는 역시 성적인 친밀함의 자리이다. 

 

164

우리는 모두 실패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실패보다 더 위대한 분이시다. 그분의 긍휼하심과 용서 그리고 받아주심은 이 모든 것을 포함한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어찌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과거의 지배에서부터 자유로울 수는 있다. 이 모습 이대로면 족하다. 그분의 사랑과 보살핌 가운데 푹 젖도록 하자. 그분이 베푸는 용서와 내일의 소망에로 부르시는 초대를 받아 들이자. 


181

예를 들어 내가 만일 밖에서의 상담이나 기타 다른 바쁜 일들에 나의 온 정력을 쏟느라 아내와 자식들에게는 아무런 정을 주지 못하게 되었다면, 나는 "정서적 간음"을 범하고 있는 것이 된다. 아내 캐롤린도 아이들도 모두 나의 따뜻한 관심을 필요로 하며 또한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에 내가 아내 캐롤린이 나에게서 감정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바를 적절히 제공해 주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면 나는 마땅히 바로 그 정절의 서약을 보다 잘 실천할 수 있는 필요 적절한 어떤 변화를 제공해 주어야 할 것이다.


199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는 사람들은 특히 타락하게 만드는 권력의 영향에 쉽게 노출된다. 바로 이 점이 성 베데딕트로 하여금 정착의 규칙을 제정하게 하였던 것이다. 6세기경에는 홀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자기의 한 말이나 행동에 대하여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던 수도자들이나 예언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정착의 규칙에 따라 그들은 서로 격려하고 훈련시키는 일이 가능해진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다. 오늘날도 대부분의 방송 설교자들과 순회 전도자들이 6세기경의 방랑하는 선지자들이 빠졌던 책임성의 결여라는 동일한 오류에 빠져 고통을 당하고 있다. 오늘날에 요구되는 것 역시 현대적인 베네딕트 교단의 규칙인 바, 이로써 그들 강력한 지도자들을 책임있는 교제권 안으로 끌어들여 훈련받게 하여야 할 것이다.


205

오늘날 우리들은 이 탐욕으로부터 자유가 얼마나 절실한가! 우리를 휘어잡고 있는 것은 영적인 세력이다. 미국의 전반적인 사조는 바로 이 탐욕이라는 영적세력에 사로잡혀 있으며 이것이 사회의 모든 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국가적인 탐욕의 악령을 추방하는 일에 주도권을 장악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마음을 열고 굶주리는 이 세계에 다시금 구제의 손을 펼 수가 있게 될 것이다. 


209

루이스는 그의 소설, <그 무시무시한 힘>에서 대학이 거짓에 놀아나고 진리를 모호하게 하는 욕망에 빠지게 될 때의 궁극적인 파괴성을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대학을 그 본래의 겸손한 진리탐구의 사명에로 불러들여야 한다. 대학은 목적과 의미 그리고 가치라고 하는 커다란 문제들을 추구하는 빼어난 자리가 되어야 하며, 그에 대한 대답들이 주어질 때 대학은 거부되지 않고 환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212

우리는 모든 것들을 마음으로부터 포기함으로써 이 권세를 타파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는 자세라면 더이상 손해볼 것이 없다. 따라서 권세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 그것이 우리의 재물과 소유를 앗아간다고 하자, 무슨 문제인가? 우리의 모든 소유는 하나님께서 잠시 빌려주신 것일 뿐이다. 그것들을 지키는 일은 우리의 일이 아니고 그의 소관일 따름이다. 이번에는 권세가 우리의 명성을 실추시켜 영향력을 앗아가려 한다고 가정해 보자. 역시 상관이 없다. 명성이란 것도 우리가 지킬 것이 아니다. 또한 설령 지키고 싶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지킬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권세가 우리를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는다면 어떤가? 그래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캄캄한 골짜기를 지나, 보다 광명한 세계로 인도하시는 그분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시다시피 우리는 더이상 아무 것도 잃을 것이 없다. 우리는 지위도, 가진 것도 없다. 이토록 완전무결한 연약함이 우리의 최대 강점이기도 한 것이다. 아무 것도 없는 이에게서 뺏을 것이라고는 없기 때문이다.


221

창조적인 권력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준다. 마틴 루터 킹목사가 미국의 인종차별 정책에 맞서 우뚝 섰을 때, 수백만이 자유를 되찾았다. 교사들이 학생들의 마음을 깨우치는 기쁨의 열쇠로 풀어 줄 때 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해방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인 셈이다. 형이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사용하여 아우들의 자존감을 세워줄 때 그는 그들에게 자유를 주는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좌절과 공포를 주기만 하는 파괴적인 옛 관습의 틀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형되게 되면 그 결과 또한 해방인 것이다.


225

사랑이야말로 영적 능력의 첫번째 표지이다. 사랑은 다른 사람이 잘 되도록 능력이 쓰여지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권능을 사용하신 경우를 주의하여 생각해 보라. 소경을 고치시고, 병자를 치유하시며, 병신과 벙어리, 문둥병자 그리고 각색 병자를 고쳐주신 일을. 의사인 누가는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눅 6:19). 모든 경우에서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한 그의 배려와 사랑의 동기를 주목하기 바란다. 그리스도 안에서 능력은 악을 멸하여 사랑으로 선을 되찾는데 사용된다. 


227

참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는 것은 은사를 받은 것 외에는 우리가 한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인식하는 것이다. 자만이 아닌 감사만이 우리의 적절한 응답인 것이다. 우리들이 비록 자유롭게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자신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과 동행하게 될 때에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위하여 힘을 다하는 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235

학교에서 권세는 성장을 촉진하는데 사용되어야지 학생을 열등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스스로 속이지 말자. 교사와 학생간에는 힘의 역학관계가 있다. 그러나 이 힘은 그들 교사들이 본래의 목적을 인식하고 있다면 학생들은 파괴시키는데가 아니라 향상시키는데 사용될 수 있다. 교사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사용하여 아이들이 학습하고, 생각하며, 새로운 것을 발견해 내는 모험을 계속하도록 자극하는데 기여하고 있다면, 그들은 바로 생명을 주는 사역을 수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교사가 학생을 너무나 심하게 몰아붙이거나 너무 호되게 비판하게 되기가 매우 쉽다. 이런 경우에는 아이들이 스스로를 무가치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교사는 학생들의 품위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자극을 줄 필요가 있으며 탁월한 학생을 격려하되 그에 못미치는 아이들을 경시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246

쟝 삐에르 드 꼬사드(Jean-Pierre de Caussade)

"굉장한 것 가운데에서만이 아니라 가장 작고 일상적인 것 가운데서 하나님을 발견한다는 것은 희귀하고도 탁월한 믿음을 소유하는 것이다"


249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리듬인 먹고, 자고, 일하고, 노는데에 맞추어야 한다.

지나친 열심은 마치 버릇없는 어린아이와 같아서 훈련이 필요하며 제멋대로 두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 계시로 보여주신 뜻을 넘어서는 성적 갈망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통제되며 게으른 습관은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고쳐져야 한다. 일에 대한 한도 끝도 없는 열심도 마찬가지이다. 기도와 믿음을 통하여 음식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의 종이 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이 불굴의 체력을 지니기나 한듯 공연한 영웅심으로 잠을 늦게 자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우리는 건강과 영적 민첩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운동을 해야 한다.


255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은 아무에게 속하지 않은, 완전히 자유로운 만물의 주인다. 그리스도인은 모두에게 속한, 완전한 의무를 지닌 모두의 종이다."


258

옳은 것이 좋다는 것을 경험을 통하여 알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게 된다. 그것은 복종해야 할 명령이 아니요 저절로 따르게 되는 거룩한 긍정(divine yes)이다.


263

그러므로 지도자됨은 종됨의 직책이다. 지도자의 자리에 앉은 사람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하여 그 지도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들의 관심은 사람들의 필요가 무엇인가 하는데 있어야 하는 것이지 자신의 명성을 날리고자 하는데 있어서는 안된다. 끌레르보의 베르나르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당신이 만약 선지자의 임무를 다하고자 한다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왕의 훌이 아니고 한 자루의 괭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267

사람들이 바라는 지도자는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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