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너무 나약해진 것은 아닐까, 렘 12:1-6

예레미야 12:1-6

1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나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2 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들의 마음은 머니이다

3 여호와여 주꼐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양을 잡으려고 끌어냄과 같이 그들을 끌어내시되 죽일 날을 위하여 그들을 구별하옵소서

4 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 이는 이 땅 주민이 악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나중 일을 보지 못하리라 함이니이다

5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

6 네 형제와 아버지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지라도 너는 믿지 말지니라

이 본문을 묵상하려면 일단 전후문맥을 잘 살펴봐야 한다. 예레미야 11장 18-21절 말씀을 잘 살펴보면, 예레미야가 자신의 고향사람들인 아나돗 사람들로부터 살인의 위협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이 예레미야를 죽이고 싶었던 이유는 예레미야가 자꾸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행한 일을 예언했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여호와께서 아나돗 사람들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네 생명을 빼앗으려고 찾아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대 우리 손에 죽을까 하노라 하도다"(렘 11:21) 


11장 22, 23절에서 하나님이 아나돗 사람들을 벌하시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불평한다. 불평의 내용은 12장 1-4절에 나온다. 예레미야의 불평은 "왜 악한 사람들은 어쩜 저리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고, 나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되려 살해의 위협 속에 있어야 하나요?"라고 요약될 수 있다. 


이 말을 들은 하나님의 반응은 예레미야의 입장에서 약간은 야박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나님은 5, 6절에서 볼 수 있다시피 위로해주시기보다는 "너 이 정도에 힘들어하면 어떡하니? 더 어려운 순간에는 어떡하려고 그러냐?"라고 다그치신다.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님은 물론 우리를 세밀하게 위로하시고 보듬어주시는 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를 온실의 화초처럼 키우시는 분은 결코 아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만큼 강해지길 원하신다. 어떤 상황에도 자족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원하신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 하나님이 허락하신 수많은 연단을 통해 강해진 바울의 이 고백을 생각해보자. 누가 이 고백을 감히 할 수 있을까? 


세상살이를 살다보면 참 인생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실감한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나 믿지 않는 자에게나 인생은 결코 쉽지 않다. 병과 죽음, 실직, 실패, 재난, 관계의 어려움 등이 우리네 삶에 예고없이 닥쳐온다. 언제까지 '힘들다, 죽겠다, 상처받았다' 불평하면서 살 것인가? 물론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이겨나가자. 하나님은 우리가 이겨낼 수 있는 시련만 주시는 분이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고전 10:13) 어려움들을 내 힘만으로 극복해왔다고 착각하여 교만해지지 말자. 많은 사람들이 그러고 있는데, 올바른 반응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으로 영광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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