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04 02:12:19

2010년 6월 군복무 중에 쓴 독후감입니다. 

 

독후감

군생활을 50일도 남기지 않은 요즈음 <슬럼독 밀리어네어>라는 책으로부터 시작해서 <빌브라이슨의 아프리카 다이어리>,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야기> 등의 책을 연달아 읽으면서 갑작스레 독서에 흥미가 생겼다. 그리고 또 읽을 책을 물색하는 중에 중대 복도 책꽂이에서 뭔가 허접한 제목과 디자인의 이 책을 발견했다. 읽을까 말까 매우 고심하던 차에 그냥 한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누어지는데 '왜 읽어야 하는가?'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이다. 1부인 '왜 읽어야 하는가?'는 책을 읽으라고 동기부여하는 내용인데 2부부터 집중해서 메모해가며 읽어서 그런지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래도 끝까지 읽은 것으로 보아 내 마음을 움직였나 보다. 그러고나서 2부를 읽어가면서 마음 속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희열이 느껴졌다. 아마 지적 갈증이 조금씩 채워진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많이, 빠르게 읽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이해가 안 되도 대충 페이지를 넘겼던 책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은이는 천천히, 깊게, 즐겁게 읽으라고 권한다. 2부부터 이러한 지은이의 의견에 따라 읽어보니 그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정말 재밌었다. 즐거웠다. 나 스스로 '읽고 나서 독후감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내 평생에 책을 실제로 읽고 독후감을 써 본 책은 <괭이부리말 아이들> 밖에 기억이 남지 않는다. 중학교 때 일인데 그 독후감으로 '으뜸상' 다음인 '버금상'을 받았다는 사실로 봐선 나에게 그리 글쓰기에 재능이 없어보이진 않는다. 나만의 착각일수도 있는 것이 그 당시에 실제로 책을 읽고 글을 쓴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라는 것이다. 아무튼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더 많은 책을, 더 깊이 읽고 싶다는 열망이 샘솟고 있다. 하지만 크리스천으로 책을 읽을 때 가졌으면 하는 마음가짐이 마침 책에 적혀 있어 그대로 옮겨본다.

 

"책을 읽는 마음에는 하늘 끝에 닿으려 하는, 달리 말하자면 바벨 탑을 세우려는 욕망이 숨어 있다. 벽돌을 구워 쌓아올리느냐, 책으로 상징된 정신을 쌓으려 하냐만 다를 뿐, 그 욕망이 없다면 책을 읽을 리 없다. 생명과 우주의 섭리를 알아내려는 것은 발견의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식에 대한 열망에는 권력의지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안다는 것은 지배한다는 것이다. 책으로 쌓는 바벨 탑은 그래서 위험하다. 무조건 앎만 추구하는 삶은 메피스토텔레스와 거래하는 파우스트다. 앎의 궁극에 이르면서도 지배와 권력의 욕망을 경계할 줄 아는 것. 이 역설을 부여잡고 있을 적에 진정 책의 주인이 된다."

 

이 글 위에 피터르 브뤼헐이 1563년에 그린 <바벨탑>이 있다. 마음 같아서는 이 그림을 가위로 오려 여기에 붙여 놓고 싶지만 내 책이 아니라 '진중문고'라.. 하지만 이 책의 주인은 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시구처럼 내가 이 책을 읽어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