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07 17:20:06

아래 글은 2017년 12월 29일에 이 책에 대해 쓴 독후감입니다. 


언젠가부터 내 안에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눠서 보는 좋지 않은 안경이 생긴 것 같다. 교회와 관련된 일, 예수님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가르치고 전하는 일은 선하고 그 외의 나머지 일들은 가치가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왔다. 예수님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고 생각되는 일을 할 때는 맘이 편하고 다른 일을 할 때는 죄책감이 생기기도 했다. 또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을 정죄할 때도 많았다. 그래서 대학원생인 나로서는 연구하는 시간은 세상적인 일을 하는 시간,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섬기는 시간은 거룩한 시간으로 은연 중에 나눠서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실에서 영상처리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으로써 나는 매우 답답했다. '나는 도대체 하루의 어떤 시간을 주님을 위해 쓰고 있는 것인가? 나는 과연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이 맞는가?'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그러던 찰나 지인의 집에 방문했을 때 강렬한 빨간 표지의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사실 작년 여름부터 이 책에 대해 듣고 추천 도서 목록에 추가해놨던 책이었지만, 다른 책들에 우선순위가 밀려 읽지 못했던 책이었다. 감사하게 흔쾌히 빌려주셔서 바로 읽기 시작했다. 마음의 갈증이 이번에는 나를 움직이는데 성공한 것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주님의 파트너가 되어 세상을 돌본다는 새롭고 풍성한 노동관을 제공한다. 이러한 성경의 개념은 단순한 일에서부터 가장 복잡한 일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를 알던 모르든 다른 이들의 수고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그러므로 성경이 노동에 관해 가르치는 신학 원리를 정확하게 깨달은 크리스천들은 모든 이들이 하는 일을 소중히 여기고 기꺼이 참여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다르게 일할 방법을 찾는다." (187p) 

옛말에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한다. 정말로 없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면 정말로 귀천이 없다. 군대에서 통신병으로 복무하고 있을 때의 경험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건물을 새로 지은지 얼마 안된터라 벽에 페인트 칠을 해야할 때였다. 나이가 꽤 있어보이시는 어르신 한분이 오셔서 페인트를 칠하시는데, 기쁨이 만연한 표정으로 구석구석 꼼꼼히 페인트를 칠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분의 태도로 인해 그분이 하시는 일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시기에 함께 일했던 분 중에 다른 한분은 안정된 보수와 직위를 가지고 계셨었는데 그분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하면 편하게 지낼 수 있을까 고민하며 생쥐마냥 이리저리 피해다니기 일쑤였다. 꽤 중요한 일을 맡은 분이었음에도 그분의 일이 무가치하게 느껴졌다.

과연 무엇이 두 사람을 다르게 만들었을까? 바로 사명감이다.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가꾸도록, 다른 사람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것임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이다. 그런 가치관으로 일하는 사람은 '성직자'이다. 역설적으로 목회자, 종교인이라도 성직자가 아닐 수 있는 것이다. 돈을 위해서 일한다거나, 명예를 위해서 일한다거나, 아니면 자신만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서 일한다면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가에 상관없이 교회에서 많이 쓰는 용어로 그냥 세상적으로 사는 것이다. 너무나 속상한 사실은 그런 사람이 너무 많다. 

하나님은 교회에서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온 우주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을 구주로 인정하는 사람이던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든 모든 사람에게 선물을 주셨다. 바로 특정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재능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지만 주변에 탁월한 성과와 업적을 내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볼 때 꼬아보지 말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섬기게 하기 위해서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같은 크리스천들은 안 믿는 사람들과도 잘 협력해서 일해야한다. 또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들을 '능숙하게' 해내야한다. "매스를 잘 다룰 줄 모르는 의사에게 과연 우리의 몸을 맡길 수 있을까? 비행기 조종에 서툰 파일럿을 믿고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을까? 반주에 박자를 못 맞추는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감동과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간 조절을 하지 못하는 요리사의 음식을 돈 주고 먹을 생각이 있는가?" 정말로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아마 모두가 No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능숙한 실력으로 이웃을 섬기는 것을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아닐까? 

"현대인들은 대부분 일 이면의 다른 일에 쫓긴다. 일을 통해 인정과 구원, 가치감과 정체성을 확보하려 한다. 그러나 복음이 주는 쉼을 체험하고 일에서 구원을 찾으려는 갈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끊임없이 원기를 채워 주고, 일을 보는 빠른 시각을 되찾아 주며, 열정을 회복시켜주는 활력의 원천을 얻을 것이다." (270p) 

하지만 절대 간과해서는 안되는 사실이 있다. 일이 우리의 인생에서 가져야할 마땅한 범위 이상으로 대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가족,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건강이다. 이것을 해치면서까지 일하는 것은 오버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하나의 우상이 된 것이다. 너무 많이 일해서도 너무 적게 일해서도 안된다. 또 우리에게 일을 맡겨주셨지만 이뤄가시는 주체가 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 사실을 믿을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쉴 수 있다. 그리고 교만해져서 다른 사람들을 깔보지 않고 겸손하게 주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다. 

"안식일을 지키는 건 세상을 움직이고,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더 나아가 지금 담당한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는 존재가 인간이 아니라는 점을 실감하게 하는 질서 정연하고 신뢰도가 높은 방법이다." (293p) 

마지막으로 이 책과 관련해서 읽어볼만한 책으로 한국적인 정서에서 쓰여서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한 신동열의 <소명에 답하다>와 청소를 하던 계란을 뒤집는 일을 하든 어떤 일을 하든 주를 위해 했던 로렌스 형제의 고전 <하나님의 임재 연습> 을 추천한다. 

일과 영성

 

 

장별 요약

Part 1 일, 하나님의 황홀한 설계

1. 일과 쉼의 균형이 필요하다 => 행복하고 싶다면, 주님처럼 일하고 주님처럼 쉬라
: 하나님은 일하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일을 맡기신다. 일은 저주가 아니라 인류에게 주어진 선물 중 하나다. 일을 통해 우리는 남들에게 유익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일을 통해 우리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가 있다. 그렇다고 일만이 삶의 유일한 의미는 아니다. 주님과의 관계보다 일이 우선될 수는 없다. 주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 있을 때 일, 여가, 가족, 우정, 행복 등 삶의 필수적인 요소들을 균형있게 배치할 수 있다. 

2. 일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 세상에 하찮은 일은 없다
: 노동은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는 주요한 성분이다. 일 자체가 존엄할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일이 고귀하다. 우리는 돈 잘버는 특정 직업들만을 멋있게 보고 가치있게 여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재능과 상관없이 돈 많이 주는 직장에 들어가곤 한다. 그러나 소득이 적든 많든, 정신노동이든 육체노동이든 모든 일은 가치가 있다. 흔히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목회 뿐만 아니라 세상적으로 보이는 장사하는 일 또한 가치 있는 일이다. 

3. 일은 하나님을 닮아 가는 수단이다 => 일터에서 주님의 매뉴얼을 따라 야심차게 일하라
: 하나님은 세상을 일의 무대로 만들었다. 즉, 인간이 마음껏 개발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재료들을 만들어 놓으셨다. 그 원재료들을 가지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방식으로 재배열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농부들은 흙과 씨앗을 이용해서 먹을거리를 만들어내고, 음악가들이 주파수를 가지고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낸다. 하나님이 세상을 결코 허접하게 만드시지 않은 것처럼 우리도 무언가를 만들 때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4. 일은 목적이 있는 소명이다 => 자신만을 위하지 말고 하나님과 세상을 위해 땀방울을 흘리라
: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하는 것은 돈이 아니다. 내가 가진 달란트와 기회가 이 직업과 적합한지, 또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과 이웃을 잘 섬길 수 있는가를 고려해야 한다. 하나님과 이웃을 잘 섬긴다는 의미가 단순히 교회 일을 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각자의 일을 탁월하고 능숙하게 해내는 것으로 이웃을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자기 일을 능숙하게 하지 못하는 것만큼 이웃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Part 2 일, 끝없이 추락하다

5. 아무리 일해도 열매가 없다 => 밤낮없이 매달려도 입에 풀칠하기조차 버겁다
: 사람은 일을 하며 살도록 창조되었다. 그러나 인류가 범죄함으로 인해 노동은 상당한 수고와 고통을 수반하게 되었다. 열심히 일해도 열매를 맺기가 쉽지 않아졌다. 땀흘려 일하면 열매를 맺긴 하지만, 엄청난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경험하게 되었다. 또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열매를 맺지 못하는 상황이 많다. 천국에서는 각자에게 주신 은사로 일을 능숙히 해내며 다른 이들의 삶에 유익을 끼치며 무한한 기쁨과 만족을 얻을 것이다. 

6. 일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다 => 그저 성공의 쳇바퀴를 따라 무작정 달리기만 한다
: 타락한 세상에서의 일은 열매를 얻기 힘들뿐만 아니라 의미를 찾기도 어렵다. 일을 하면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할까? 일을 통해 이웃을 섬기고 일을 잘해내는 데서 오는 기쁨을 얻는 것에서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출세하고 유명해지려는 것에 의미를 둔다면 수고를 거듭하지만 만족하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점차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갈 것이다. 따라서 관계를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정도에서 일에 몰두해야 한다. 

7. 탐욕의 수단으로 변질되다 => 고생해서 이만큼 일구었는데 이걸 포기할 수는 없어!
: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리는 이미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중요성을 부여해주셨다. 이것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때로 나도) 일에서 정체성을 세우려고 한다. 스스로 중요한 존재가 되려고 하는 교만한 갈망은 경쟁과 분열을 일으킨다. 나처럼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공부할 기회를 가진 사람은 엄청난 기회와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영향력을 출세의 수단으로 여기지 말고 여러 사람들을 섬기는데 사용하자. 

8. 일이 인생의 전부가 되다 => 인생이 통째로 일에 빨려 들어가 망가지다
'좋은 것'으로 '궁극적이고 영원한 대상'을 삼는 것이 우상이다. 현대 사회는 일을 '좋은 것'에서 '구원'으로까지 격상시켰다. 일이 곧 자신을 규정하는 '아이덴터티'가 되어버렸고,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남들이 보기에 멋있어 보이는 직장을 갖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또 남들이 인정할만한 성과를 내기위해 쉼없이 점진한다. 하지만, 일은 인생의 전부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좋은 것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일이라는 우상을 경계하자. 


Part 3 일과 영성, 복음의 날개를 달다

9. 복음의 관점으로 일을 이해하다 => 회사 신우회에 참석하는 선에서 만족하지 말라
우리는 크리스천의 세계관이라는 렌즈로 세상을, 일을 바라봐야한다. 크리스천의 세계관은 창조, 타락, 구원과 회복으로 압축할 수 있다. 하나님이 선하게 만든 세상이 죄로 인해 망가졌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내주는 엄청난 희생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셨고, 또 다시 오셔서 완전히 회복시키실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함께 죄로 망가진 사회를 회복해가는 것이 우리의 일이 갖는 진정한 의미다. 

10. 일에 대한 이원론을 배격하다 => 이건 세상 일이고 저건 하나님 일이라는 이분법을 배격하라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일하는 데 필요한 달란트와 재주를 주셨다. 하나님과 이웃을 잘 섬기게 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우리는 안 믿는 사람들과도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선한 일을 위해 협력할 수 있고, 또한 그래야 한다. 그리고 안 믿는 사람들이 이뤄 낸 선한 일들을 꼰 눈으로 바라보며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교회에서 하는 일만이, 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이 대놓고 드러나는 일만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아신다는 것을 잊지 말자. 

11. 일을 하는 동기가 바뀌다 => 높은 보수나 칭찬을 위해 일하지 말라
: 우리 크리스천은 단순히 상사와 고객의 눈치를 보면서 일해서는 안된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리스도께 하듯이 해야한다. 즉,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의견이다. 세상의 그 어떤 상사보다도 엄격하지만 합리적인 분의 생각을 일터 가운데 반영해야 한다. 억지로 하는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로 일에 몰입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단순히 사람의 칭찬과 보수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기에 자유함 가운데 일을 즐길 수 있다.

12. 새로운 능력으로 일하다 => 구원의 확신을 가슴에 새기고 열정을 품고 일하라
: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생산적이고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 쉴 새 없이 무언가를 한다. 열심히 열정적으로 사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것에서 자존감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문제다. 안간힘을 쓰지만 탈진할 뿐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대신 죽기까지 사랑한 특별한 존재이다. 그것만이 우리에게 건강한 자존감을 준다. 일에 몰두하지만 일에 사로잡히지 않고 또한 제대로 쉴 수 있다. 나만이 아닌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열정적으로 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