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9 22:24:05

아래 글은 2020년 4월 19일에 쓴 독후감입니다.

 

독후감

어떤 책은 궁금했던 부분들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책이 있다. 또한 머리 속에서 정리되지 않고 모호하게 떠다니던 개념들을 깔끔하게 정리하도록 도와주는 책이 있다. 나에게 있어 이 책이 바로 그러했다. 읽는 과정 중에 이 책이 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책인지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들을 이분법적인 구조로 설명한다. 이분법적으로 분류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긴 하지만, 복잡한 현실 세계를 이해하는데는 큰 도움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나도 이에 대해서 동의한다. 학문의 시작은 결국 범주화(categorization)기 때문이다. 거칠게(roughly) 범주화한 다음에 조금씩 디테일한 요소들을 고려해가는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범주화로 인해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는 면도 많다. 저자도 물론 이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다. 

 

저자는 먼저 역사를 생산수단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투쟁으로 분류했다. 원시, 고대, 중세, 근대, 현대 모두 결국 생산수단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계급화된 사회로 흘러왔다는 것이다. 토지를 소유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공장을 소유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기업을 소유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항상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은 자들을 부리는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경제체제를 시장의 자유를 중시하는 체제와 정부의 개입을 중시하는 체제로 분류했다. 시장의 자유를 가장 중시하는 체제부터 정부의 개입을 가장 중시하는 체제까지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초기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후기 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로 분류된다.  

 

초기 자본주의 - 신자유주의 - 후기 자본주의(수정 자본주의) - 사회민주주의 - 공산주의 

 

대한민국, 미국, 일본 등은 신자유주의를 경제체제로 선택한 나라다. 시장의 자유를 정부의 개입보다 더 중시하는 나라인 것이다. 공산주의를 택한 나라에는 중국, 소련, 북한 등이 있는데 대부분 경제에 있어서 철저히 실패했고, 결국은 좀 더 시장의 자유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경제체제를 손 본 상황이다. 그리고 시장의 자유를 인정하긴 하지만 그보다 정부의 개입을 더 중시하는 사회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에는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독일 등이 있다. 현재 극단의 위치에 속한 경제체제인 초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작동하고 있는 나라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한다. 우리가 실질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경제체제는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정도이다. 

 

저자는 정치를 보수와 진보로 분류했다. 정치체제는 경제체제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데, 신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보수, 사회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진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시장의 자유를 중요시하면 보수인 것이고, 정부의 개입을 좀 더 중요시하면 진보인 것이다. 그것을 눈으로 쉽게 알 수 있는 지표는 바로 세금이다. 세금을 적게 거둬 작은 정부를 추구하면 보수이고, 세금을 많이 거둬 큰 정부를 지향하면 진보다. 세금을 적게 거두면 기업이 활동하기 좋아지기 때문에 경제성장에 유리하다.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세금이 적어지기 때문에 복지에 사용할 수 있는 돈은 적어지고, 그에 따라 빈부격차가 커질 위험이 있다. 반면 세금을 많이 거두면 기업이 활동하기 나빠지므로 경제성장에 불리하다. 하지만 복지가 좋아지고, 그에 따라 빈부격차가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다. 한마디로 보수는 친기업적이고, 진보는 친서민적이다. 

 

저자는 사회를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로 분류했다. 개인주의는 개인의 이익을 공동체의 이익보다 좀 더 중시하는 것이고, 집단주의는 공동체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개인주의가 심화되면 이기주의가 되고, 집단주의가 심화되면 전체주의가 된다. 이기주의는 법으로 충분히 제재를 가할 수 있어 그나마 괜찮지만, 전체주의는 위험하다.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 등의 폭력적인 역사를 통해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저자는 윤리를 의무론과 목적론으로 분류했다. 의무론자는 꼭 지켜야할 도덕 법칙을 지키는 것이 윤리라고 말한다. 반면 목적론자는 내가 하는 행동의 결과가 많은 이들에게 이익을 준다면 그것이 윤리라고 말한다. 대표적인 철학자로서 칸트가 의무론자에 속하고, 롤스는 목적론자에 속한다.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의무론자에 가깝고, 결과가 과정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목적론자에 가깝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책의 주요 내용을 정리해봤다. 책을 읽고 나서 느낀 바는 각 부문마다 이분법을 기가 막히게 잘 활용했다는 것이다. 이보다 쉽고 합리적으로 분류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각각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논리적으로 잘 구성했다. 감탄이 나왔다. 저자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나는 각 영역에서 어느 주장에 좀 더 동의할까 한번 생각해봤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로 나타내자면, 

 

시장의 자유 80% > 정부의 개입 20%

개인의 이익 55% > 공동체의 이익 45%

의무론 90% >목적론 10%

 

정도로 나타낼 수 있을 것 같다. 한마디로 말하면 나는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무조건 결과가 평등한 것보다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그만큼 대우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다수의 폭정을 두려워한다. 다수가 이것을 한다고 나도 그것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수가 외친다고 그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자들의 돈을 정부가 과도한 세금으로 빼앗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는 것은 명목이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대로 물려받아서 노력하지 않고도 많은 재산을 소유한 자들도 있겠지만, 정말 없는 상황에서도 노력해서 현재의 부를 이룬 사람도 꽤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는 좋은 의도를 갖고 있더라도 소위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과한 세금의 방법으로 부자들의 돈을 갈취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돈을 많이 소유한 분들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분들도 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