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친구들인 태호와 병일화정부부(+뱃속에 있는 축복이)가 제천에 놀러왔다. 태호는 대전에서, 병일화정부부는 서울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덥다고 집에만 있자니 미안한 마음에 함께 갈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 생각해봤다. 문득 제천 옆 영월에 있는 청령포가 떠올랐다. 청령포는 지나가기만 여러 번 지나가봤지 나도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이었다. 여러 번 방문할 기회가 있었지만 특별한 사람들과 함께 가고 싶어서 남겨둔 곳이었다. 여담이지만 학부시절 남산 중턱에 있는 동국대에 다니면서 남산타워에는 여자친구가 생기면 올라가야겠다고 다짐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해야할까? 



▶ 청령포: 단종이 유배되어 보내진 곳


가기 전 날 밤에 나는 청령포가 어떤 곳인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단종의 유배지 정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을 가이드해주기 위해서는 좀 더 공부가 필요했다. 역사에 무뇌한인 나는 우선 단종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태정태세문세예성연중인명선...."에서 단, 즉 문종의 아들이자 세종의 손자단종이었다. 문종은 몸이 병약해서 재위 2년 만에 승하하였고, 그의 아들 단종이 1452년에 왕위를 물려받았다. 그때 그의 나이는 12세에 불과했다. 

문종의 동생 수양대군(세조)은 조카 단종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기 시작했다. 1453년(단종 1년) 10월, 수양대군은 한명회 등과 결탁하여 김종서와 황보인을 죽였고, 또한 자신의 동생인 수양대군을 강화도로 귀양 보낸 뒤 스스로 영의정에 올라 권력을 장악했다. 단종이 왕위에 오른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때였다. 이를 계유정난이라고 한다. 배우 이정재씨가 수양대군의 역을 맡았던 영화 <관상>이 이를 소재로 삼고 있다: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수양대군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귀양보낸 안평대군에게 사형을 내리고, 막내동생 금성대군은 경기도 연천으로 유배보낸 후, 1455년에 단종을 상왕(죽지 않은 상태에서 왕위를 물려준 왕)으로 물러나게 난 후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수양대군이 명분도 없이 쿠데타를 일으켜 왕권을 찬탈하는 것을 모두가 묵인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456년(세조 2년) 6월에 성상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응부, 유성원 등은 암암리에 단종의 복위를 추진했다. 명나라 사신을 대접하는 창덕궁 연회에서 세조를 죽이려고 했으나, 발각되어 모두 죽게 되었다. 이들을 일컬어 사육신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죽진 않았지만 평생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분개하며 죄인과 같이 살았던 김시습, 원호, 이맹전, 성담수, 조려, 남효온 이 6명을 일컬어 생육신이라 한다.

1457년(세조 3년) 6월에는 단종의 장인인 송현수가 단종의 복위를 계획했다는 이유로 잡혀갔다. 세조는 단종을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등시키고 영월 청령포로 귀양 보냈다. 계속해서 이러한 복위운동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한 세조는 끊임없이 단종에게 자살을 강요했고, 결국 단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렇게 그는 1457년(세조 3년) 10월 24일에 1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지금 청령포에서 멀지 않은 영월 장릉에 묻혀 있다.

단종의 지위 변화를 살펴보면 참 마음이 씁쓸하다. 

왕 -> 상왕(죽지 않은 상태에서 왕위를 물려준 왕) -> 노산군 -> 서인(관부의 낮은 벼슬아치) 


▶ 청령포 방문

제천시내에서 약 30분간 차를 몰고나니 우리는 어느덧 청령포에 도착했다. 청령포는 배를 타야지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소나무 숲으로 우거진 청령포의 모습.


배를 기다리면서


강폭은 그다지 넓지 않았기에 우리는 배를 타자마자 내렸다. 우리 눈 앞에는 짧은 자갈밭과 그 너머 울창한 소나무 숲이 펼쳐졌다. 이날은 상당히 더웠지만 소나무 숲으로 들어가니 꽤 시원했다. 

얼마 들어가지 않아 건축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단종이 살던 기와집(단종어소)과 하인들이 살던 초가집이 복원되어 있었다. 또한 그 옆에는 단묘재본부시유지비라는 비석이 세워져있다. 이는 1763년(영조 39년)에 영조가 세운 것으로 단종이 유배되어 살던 곳임을 증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단종어소 옆에서 아내와 로아. 로아야 너 이때 참 작았었구나 ㅎㅎ


단종어소를 지나서 숲으로 들어가면 아주 큰 소나무가 하나 보인다. 관음송(천연기념물 제349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관음송은 단종이 유배 온 것을 보고 오열하는 소리를 들은 소나무라는 뜻이라고 한다. 수령이 600년에 키가 30미터나 된다. 실제로 보면 무지 크다. 


관음송 앞 병일, 화정 그리고 뱃속에 축복이.


관음송 앞에서 나, 태호, 병일. 대학교때 이 친구들을 만나게 되어 참 행복하다.


길을 따라 언덕으로 올라가면 노산대, 망향탑, 금표비 등을 볼 수 있다. 우리 가정은 로아가 너무 더울 것 같아서 올라가지 않고 관음송 근처에서 친구들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노산대, 망향탑, 금표비를 보러 언덕을 올라가는 태호, 병일, 화정 그리고 뱃속의 축복이.



▶ 정리


8월에 방문하고 작성을 시작했는데 이런저런 바쁜 일에 치여 지금 11월 말이 다 되어서야 글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 축복이는 건강히 태어났고, 우리 로아도 무럭무럭 자랐다. 축복이는 이제 이준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친구들과 청령포를 방문한 후에 나는 영화 '관상'을 다시 봤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고, 알쓸신잡의 영월 편을 챙겨 보았다. 그냥 단종을 더 알고 싶었다. 


나는 왜 단종에 대한 자료를 찾아봤을까? 논문 읽고 연구하고 논문 쓰기에도 바쁜데 그를 알고자 했을까? 왕으로 태어나서 죽음의 길을 가야했던 단종이 그저 불쌍해서였을까? 아니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달성한 세조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우리 로아와 이준이가 단종처럼 못된 어른에 의해 희생되는 일이 없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다른 어른들을 탓할 게 아니라, 내가 우리 아이들이 누려야 할 것들을 빼앗아버리는 어른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 어른들의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한다. 나를 포함한 어른들이 많이 하는 거짓말 중에 하나가 "다 너희들을 위한 것이야"가 아닐까 싶다. 밖에서 집에 들어갈 시간도 없이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면 나는 성취감을 느끼고 좋을지 몰라도, 아이들은 아빠의 빈자리를 크게 느낀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내팽겨치고 일에만 몰두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아이는 돈으로 키우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키우는 것이다. 내가 더 잘 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우리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불상사가 없도록 마음을 항상 다잡아야겠다. 





<참고자료>

[1]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남한강편", 창비

[2]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46579&cid=40942&categoryId=33383, 네이버 지식백과, "영월 청령포"

[3]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79818&cid=40942&categoryId=33383, 네이버 지식백과, "단종"

[4]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60507269&qb=64W47IKw6rWw&enc=utf8&section=kin&rank=4&search_sort=0&spq=0&pid=T/GStwpySD8ssbw4vqKsssssslV-495624&sid=VBIt7FbTzcJ7aZM5K/pBaA%3D%3D, 네이버 지식인, 단종이 노산군이 된 이유

[5]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84107&cid=47306&categoryId=47306, 네이버 지식백과, "생육신, 사육신의 정신을 물려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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