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ual saliency 알고리즘 GBVS의 원리

visual saliency 알고리즘은 이전 포스팅 https://bskyvision.com/509에서 설명했듯이, 이미지 내에서 시각적으로 의미있는 지역이 어딘가를 예측해주는 알고리즘이다.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FP(fixation prediction) 방식이고 또다른 하나는 SOD(salient object detection) 방식이다. 전자는 사람의 시선이 머물 곳을 예측해내는 방식이고, 후자는 시각적으로 중요한 물체를 검출해내는 방식이다. 

 

GBVS의 이해

GBVS(graph-based visual saliency)는 FP 방식에 속하는 알고리즘이다. 이 알고리즘의 original paper는 캘리포니아 공대의 Harel 등이 저술한 "Graph-based Visual Saliency"이다. GBVS를 개발할 때 저자들이 주안점을 둔 가설은 "시각적으로 중요한 로컬 이미지 패치는 그것과 이웃한 로컬 이미지 패치들과 상당히 다르다"이다. 그들은 마코브 체인(Markov chain) 방법을 사용해서 로컬 패치들 간의 비유사도를 측정했다.

 

저자들은 우수한 visual saliency 모델들은 다음과 같은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정리했다. 

1) Extraction (특성 도출): 이미지의 여러 다양한 특성을 반영하는 특성맵들을 도출한다. 

2) Activation (활성화): 각 특성맵을 활성화시킨다. 

3) Normalization/Combination (표준화/조합): 활성화된 특성맵들을 표준화한 후에 하나의 맵으로 조합한다. 

 

따라서 저자들은 GBVS는 다음과 같이 작동하도록 개발했다. 먼저 세기(intensity), 방향(orientation), 컬러(color)와 같은 저차원의 특성맵들을 도출한다. (참고로 나는 지금 디폴트 세팅의 경우를 말하고 있다.) 이미지 피라미드를 이용해서 여러 스케일에서 특성맵을 도출한다. 결과적으로 24개의 특성맵(intensity 3개, orientation 12개, color 9개)이 산출된다. 그 다음에 graph 기반 활성화를 이용해서 특성맵들을 활성화시켜준다. (이때 마코브 체인 방법이 사용된다.) 이어서 fast raise to power scheme을 이용해서 특성맵을 표준화한다. (이때도 마코브 체인 방법이 사용된다.) 이제 각 채널 내의 특성맵들을 모두 더해준다. 따라서 intensity 특성맵 1개, orientation 특성맵 1개, color 특성맵 1개로 정리된다. 이 세 채널의 특성맵을 모두 더해서 saliency 맵을 산출한다. 더 좋은 성능을 위해 saliency 맵을 blur 해준다. 

 

GBVS 내부 들여다보기

그러면 이제 실제 하나의 이미지를 GBVS가 어떻게 처리해가는가를 살펴보자. 아래 이미지를 테스트 이미지로 사용했다. 첫째 딸 로아 막 100일 지났을 때 사진이다. (귀엽죠?ㅋㅋ)

 

2018. 9. 10. 충무로 동국대 근처 스타벅스에서 찍은 사진

 

step1: compute raw feature maps from image

GBVS는 먼저 여러 개의 특성맵을 도출합니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24장의 특성맵을 도출하는데, 그 중 3개는 intensity에 관한 것이고, 12개는 orientation에 관한 것이고, 9개는 color에 관한 것이다. 

 

 

step2: compute activation maps from feature maps

그 다음에는 각 특성맵들을 활성화해준다. 

 

 

step3: normalize activation maps

이어서 활성화된 맵을 표준화해준다.

 

 

step4: sum across maps within each feature channel

각 특성 채널의 특성맵들을 더해준다. 결과적으로 3장의 특성맵으로 정리되었다.

 

 

step5: sum across feature channels

모든 채널의 특성맵들을 더해서 최종 saliency 맵을 산출해준다. 

 

step6: blur for better results

최종 saliency 맵에 blur 효과를 줌으로써 성능을 극대화시킨다. 

 

 

saliency 맵이 잘 산출되었는지, 위의 테스트 이미지와 비교해보자. 이미지 내에서 중요한 부분들이 어느정도 잘 강조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GBVS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GBVS의 매틀랩 코드는 [3]에서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1]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5206280/, Veale 등, "How is visual salience computed in the brain? Insights from behaviour, neurobiology and modelling"

[2] http://www.scholarpedia.org/article/Visual_salience#Simple_computational_framework, Itti, "Visual salience"

[3] http://www.vision.caltech.edu/~harel/share/gbvs.php

[4] Wang et al., "Learning a Combined Model of Visual Saliency for Fixation Prediction", TIP(2016)

댓글()

심교훈의 서재(101-150권)

101. 전광 지음,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 생명의말씀사(2003)
=> 1독(-20190911)

102. 류모세 지음, "열린다 성경 성전 이야기", 두란노(2009)
=> 1독(-20190913)

103. 케이 아더 지음, 마영례 옮김, "성, 그 끝없는 유혹", 프리셉트(2004)
=> 1독(-20190926)

 

104. 홍정욱 지음, "7막 7장 그리고 그 후", 위즈덤하우스(2003)

=> 1독(-20191004)

 

105. 래리 킹 지음, 강서일 옮김, "대화의 신", 위즈덤하우스(2015)

=> 1독(-20191010)

 

댓글()

<오두막>, 하나님은 항상 선하시다

아래 글은 2018년 4월 24일에 이 책에 대해 쓴 독후감입니다. 

 



God is good all the time! All the time God is good!

이 문장은 예전에 감명 깊게 본 영화 <신은 죽지 않았다>에 나왔던 대사다. 이 고백이 <오두막>이라는 장편 소설을 한 줄로 요약하기에 가장 적합한 문장인 것 같다. 하나님은 항상 선하시다! 

이 소설에는 맥이라는 한 남자가 나온다. 그는 사랑스러운 여자 낸과 결혼하여 슬하에 다섯 명의 아이를 두었다. 존, 타일러, 조시, 케이트 그리고 막내딸 미시. 

어느날 그는 휴가를 내서 조시, 케이트, 미시와 함께 캠핑을 떠났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에 막내딸 미시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오랜 수사 끝에 미시가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 오두막을 발견했지만 시신은 찾을 수 없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이 사건은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큰 상처로 남았다.

이 사건을 생각조차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던 어느날 그는 우체통에 꽂힌 한 통의 편지를 보게 된다. 편지의 내용을 확인해보니 고통의 중심인 그 오두막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보낸이는 바로 파파 (하나님을 부르는 아내의 애칭). 살인자의 장난일까 의심스럽기도 했지만 그는 하나님이 정말로 이 편지를 보내신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곳으로 간다. 오두막에 여전히 남아있는 딸의 핏자국을 보며 자신이 도저히 여기에 왜 왔을까 후회스럽고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잠들었다. 잠에선 깬 그는 인간의 모습이지만 매우 특별한 세 사람을 만나게 된다.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그들과/그와 대화를 하며 교제를 나누며 자신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막내딸 미시 또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는 울분에 차서 이것저것 따져물어보는 것마다 친절히 대답해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여전히 딸이 유괴되어 살해당하는 끔찍한 일이 왜 일어났어야 했는지 분명히 알 수 없었지만, 자신도 딸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딸의 죽음을 넘어 그에게 있었던 쓴뿌리를 제거하기 원하셨다. 바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감정. 술만 마시면 엄마를 무자비하게 때리고, 또 자신을 나무에 묶어 놓고 때릴 정도로 가혹했던 아버지에 대한 혐오를 주님은 다루기 원하셨다. 그러한 아버지의 존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싫게 만들었었다. 이 쓴뿌리는 맥의 삶을 갉아먹고 있었다. 

하나님은 맥에게 자신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두 사람, 즉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의 딸을 죽인 사람을 용서하기를 도전하신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한 평생 맥이 힘들어할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쉽지 않았지만 맥은 순종하여 그들을 용서하기로 결단한다.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가 아니라 일단 주님의 요청에 순종함으로, 용서를 선포한다. 

그 짧은 여행을 통해 그의 마음을 억누르던 상처, 미움, 고통은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어루만져진다. 그는 자신을 힘들게 하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날개를 얻게 된다. 

우리 각자도 맥이 경험한 것과 비슷한 사건들을 인생에서 경험하게 된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욥도 경험했다. 우리는 그러한 고통스러운 경험을 할 때 도대체 왜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나에게 일어나게 하셨을까하고 원망하곤 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더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성경에서도 동일한 내용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신다. ​우리가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뭔가 도움이 되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존재 자체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리 각자는 너무나 존귀하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거나,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자꾸 뭔가 다른 것으로 나의 존재 가치를 부각시키려고 한다. 좋은 직업을 가짐을 통해서, 멋진 배우자를 가짐을 통해서, 유명해짐을 통해서 내가 존귀한 사람인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항상 경쟁이 가득하다. 남들보다 더 귀해지려고 애쓰는데 그러지 않아도 사실 원래 귀한 존재들이다.

또한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기준으로 선악을 판단한다. 그래서 나에게 좋은 일인 것 같으면 선하다고 여기고, 나에게 불이익을 주는 일인 것 같으면 악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사람마다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많이 다르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일단 좋은 사람이고, 나에게 잘못하는 사람이면 무조건 나쁜 사람이다. 반면 하나님은 완전한 기준을 갖고 계신다. 

그렇다면 왜 선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우리 삶에 허락하시는 것일까? 그 답은 우리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정직할 것이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다 이해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그 자체로 경배받을 만한 존재가 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선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심이 분명하다. 확실하다. 

댓글()

<글자전쟁>, 한자 vs 은자

아래 글은 2018년 3월 4일에 이 책에 대해 쓴 독후감입니다. 

 



김진명 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과연 어디까지가 팩트일까?' 그는 현존하는 인물들과 현실, 역사를 토대로 소설을 쓰기 때문이다. 글자전쟁의 한 인물인 소설가 전준우가 바로 김진명 작가 자신의 분신과 같다. 

"문단에서는 그를 허구라는 장치를 사용하지만 드러난 사실보다 더 깊은 수면 아래의 진실을 캐낸다는 뜻으로 '팩트 서처'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과연 김진명 작가가 글자전쟁을 통해 밝히고 싶은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한자를 누가 처음 만들었는가?'이다.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한자가 중국의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한자를 사용하는 나라는 중국, 한국, 일본 등 여러나라이지만. 중국인들은 한국과 일본 사람들이 자신들이 개발한 한자를 빌려가서 사용히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한자를 처음 만든 민족은 한족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자는 한족의 나라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동이족의 나라였던 은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1899년에 중국 산동성에서 은나라의 수도였던 은허가 발견되었는데, 그곳에서 나온 고고학적 유물들을 통해 은나라가 동이족의 후손임이 확인되었다. 또한 발견된 갑골문을 통해 이미 5000개가 넘는 한자가 은나라에서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한자'를 '은자'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은나라의 주인이었던 동이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이족은 동쪽에 큰 활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우리 한민족을 뜻하는 것이다. 동이족이 은자를 처음 개발했고, 이후에 한족 나라인 주나라가 동이족 나라인 은나라를 멸망시킨 후에는 주나라도 은자를 사용했다. 아마 오랜 시간동안 한족들은 자체적으로 은자를 발전시켜갔을 것이다. 그러면서 은자 대신에 한자라는 이름도 붙였을 것이고.

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문호이자 저널리스트인 임어당(1895~1976)과 우리나라의 안호상 문교부 장관이 나눈 대화를 살펴보자. 

안호상 장관: "당신네 중국인들이 한자를 만들어 머리 아파 죽겠소. 왜 그렇게 복잡한 문자를 만들어 우리 한국인들까지도 한문혼용이냐, 한글전용이냐로 이렇게 골치 썩이며 대립하게 만드는 거요?"

임어당: "한자는 당신네 동이족이 만든 건데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씁쓸하지만 안 장관의 생각이 우리 대부분이 갖고 있는 생각을 반영하는 것 같다.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한자', 아니 '은자'가 중국인이 아니라 우리의 조상들의 고민과 노력으로 개발된 것이라니! 자부심을 가질만한 사실이다. 한자와 한글 모두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그렇다고 한자가 우리 한국인만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동이족이 처음 만들었어도, 역사상 한자를 사용해온 많은 나라들이 점차적으로 발전시켜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자는 한국의, 중국의 것만이 아닌, 한자를 사용해온 수많은 나라의 것이다.

중국의 많은 고고학자들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몰랐고, 지금도 수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같은 부단한 역사왜곡의 결과이기도 할 것이고, 또한 우리의 무관심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야한다. 진리, 진실을 사수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한다. 이러다간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과 정체성을 다 빼앗겨 버린다. 가짜라도, 허위사실이라도 계속 듣게 되어 익숙해지면, 그것은 어느새 우리 생각 속에 진짜로 둔갑한다. 쪽수와 열심이 많은 쪽이 득세하는 세상이다. 중국과 일본의 비양심적인 학자들은 지금껏 열심히 역사를 왜곡해왔다. 그들의 열심은 지금 꽤 열매(?)를 맺고 있다. 독도분쟁, 동해의 명칭 문제, 동북공정 등을 그들이 괜히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 석사를 하면 석사 1년차 때 중국문화 수업을 필수로 듣는다. 그 수업에서 사용하는 교재에서는 한자를 고대 중국인이 만든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다. 진정 한자를 개발한 은나라의 구성원이 한족이 아니라 동이족이라는 말은 찾아볼 수 없다. 진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그 수업을 듣는 수많은 외국인들은 '한자가 중국인의 조상들이 개발해서 이렇게 발전해 온 것이구나'하며 자기도 모르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면서 은연 중에 중국인에 대한 존경이 생긴다. 이것이 바로 중국의 전략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역사 왜곡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다. 중화사상,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을 전파하고자 하는 것이다. 

글자전쟁에서 김진명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한자를 우리의 조상이 처음 만들어 사용했다는 사실과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한 고발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역사의식을 계몽하는 것에 있지 않나 싶다. 

댓글()

<반일 종족주의>, 일본과 관련된 근현대사의 진실은?

2019년 8월 21일에 쓴 독후감이다. 



아마 요즘 가장 핫한 책이 아닐까 싶다. 조국 전 수석을 비롯해서, 연일 언론에서 공격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방학 때 한국에서 책을 구입하고 중국으로 들어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 책을 펴는데, 주위에 앉은 한국 사람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나를 향한 비난의 시선인지, 아니면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의 시선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면 반일감정에 동조하지 않으면 매국노로 여기는 분위기에 위축되어서 나 스스로 그렇게 느낀 것일 수도 있다. 

약 400페이지가 되는 책을 읽으면서 조국 전 수석처럼 구역질이 나진 않았다. 오히려 '엇? 내가 알던 것과 좀 다르네? 이거 정말 사실일까? 꽤 신빙성 있는데?'하는 호기심과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면 무조건 일본을 싫어해야 한다는 것을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배워왔다. 왜냐하면 일본, 일제는 나쁘니까. 잔학무도한 일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했으니까. 우리는 교과서를 통해서, 영화를 통해서, 다큐를 통해서, 언론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배워왔다. 

그런 와중에 나는 2007년, 2008년 두번 일본에 여행을 갔었다. 그때 느낀 것은 "일본 엄청 깨끗하네?"와 "일본 사람들 진짜 정직하네?" 이 두 가지였다.

나는 2007년 도쿄 여행 중에 디지털 카메라와 축구기념공을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 각각 잃어버렸다. 누가 훔쳐간 것이 아니라 정신없이 놀다가 놓고 간 후에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번 모두 근처 분실물센터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지금 지내고 있는 중국에서는 꿈꿀 수도 없는 일이다. 또한 우리 조국 대한민국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은 겉과 속이 다르다고 폄하하기도 하는데, 겉모습이라도 그런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한 것 아닌가? 이런 정직성은 정말 배워야한다. 

또 한번은 한 일본분과 대화를 하던 중에 그분께서 뜬금없이 나와 친구들에게 "예전에 우리 나라 사람들이 잘못한 것들 용서해줘. 정말 미안해." 이렇게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오히려 내가 더 죄송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으로서 아직까지도 일본을 용서하지 못한 마음이 내 안에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분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분이 우리에게 이렇게까지 용서를 구하는가! 굉장히 송구스러웠다. 이 사건은 일본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많이 바꿔주었다. 

일본 여행 이후 나는 캄보디아, 중국, 필리핀, 크로아티아, 벨기에, 독일에 갈 기회들이 있었다. 지금 지내고 있는 중국과 같이 길게 있었던 곳도 있고, 짧게 지나간 곳도 있다. 만약 이 중에 하나의 국가에서 살아야한다면 나는 일본 또는 독일을 선택할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요즘 어떤 사람들은 나를 매국노라고 지칭할지도 모르겠다. 어느샌가 우리 대한민국은 자신이 좋았던 경험을 좋았다고 말하는 것을 눈치봐야하는 나라가 되었다. 참으로 슬프다. 

나는 과거 일본의 행적을 잘했다고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 일제는 아무리 좋게 봐도 대한민국에 정말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은 무조건 나쁘고 잘못되었다는 강한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일본이 실제 어떤 나라인지, 일제 시대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해 중립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은 무조건 선이고, 일본은 무조건 악이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역사를 보면 제대로된 평가를 내릴 수가 없다. 시중의 인기있는 소설책, 영화, 역사책, 언론기사, 다큐멘터리 등은 우리는 선, 일본은 악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중립적으로, 입체적으로 양국을 바라보려는 시도들은 거의 다 말살되고 있다. 반일 종족주의 때문이다. 

<반일 종족주의>는 일제시대 우리 한국인들에게 일본이 잘못한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일제가 잔악무도하게 지배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은 밝힌다. 실제와 그 정도의 차이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잘못했더라도 잘못한 이상으로 형을 내리는 것은 정의로운 일이 아니다. 실제 사실에 근거해서 형을 내려야 한다. 또한 이 책은 해방이후 일본이 우리에게 여러번 사죄의 뜻을 표했고, 여러번 배상을 해왔다는 역사적 사실들도 알려준다. 저자들은 일본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진실의 편을 드는 것이다. 

저자들은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악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거짓말 문화를 지적한다. 거짓말하는 국민, 학문, 정치, 재판에 대해서 자성을 촉구한다. 이러한 문화 가운데 일본과 관련된 근현대사를 점차적으로 왜곡해온 것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거짓이 가득한 사회는 결코 발전할 수 없고 결국 망국의 길로 간다는 진리를 저자들은 전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좀 더 입체적으로, 그 당시 상황을 이해하며 보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던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또한 사실과 다른 부분이 꽤 많았다. 돌이켜보면 역사를 감정적으로 배워왔다. 제대로 역사적 사료를 살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역사 공부를 신중하게 차차 해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지금보다 더 정확히 근현대사를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또 지금보다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정치적 이념이 진보든, 보수든, 중도든 상관없이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