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3 23: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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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생 2화

일주일이 흘렀고, 개강의 시간이 찾아왔다. 나의 주인은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있는 4학년 공대생이다. 주인은 2학년  C학점을 받은 물리전자라는 과목을 재수강 하게 되었다. 공학관 4층에 위치한 강의실에는 얼핏 보기에 주인과 적어도 대여섯 살은 차이나 보이는 풋풋한 학생들로 채워져 있었다.

 

머리가 반짝이시는 교수님은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발전해나가는  스마트폰의 입장에서 보기엔 정말 괴짜셨다. OHP라고 불리는 오버헤드 프로젝터를 수업에 사용하고 계셨다. 나는 그날 OHP 처음 봤다. 학생들의 신기해하는 표정을 보아하니 몇몇 복학생을 제외하고는 그것을 처음 보는  같았다. 이런 유물이 아직도 대학에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주인은 옆에 앉은 후배에게 라떼는말이야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거  어렸을  교회에서 악보 영사할  자주 쓰던 거야. 캬아~ 아직도 이걸 쓴다고?  멸종한  알았는데.  이거   있어?”

 

교수님은 영어로 쓰인 책을 필름에 복사한 것을 OHP 이용해 스크린에 투영시켜서,     읽어나가며 중요한 부분을 부연 설명하셨다. 주인을 1학년 때부터 알고 있던 노교수님은 매번 수업 시간에  OHP 강의실에 갖다  달라고 부탁하셨다.  무거워 보였다.  

 

주인은 교수님의 훤한 이마 밑에 붙어있는 작은  눈과 OHP 인해 밝혀진 불그스름한 스크린 화면을 번갈아 보았다. 주인은 이걸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다소 충격적이었는지 계속 어리둥절해하며 수업을 들었다.

 

그러다 좌측 앞쪽에 앉아 있는  학생에게 시선이 향했다. 한국인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외모의 소유자였다. 아무래도 유학생인  같았다. 평소 외국인에 관심이 많은 주인은 수업 후에 찾아가 인사를 건넸다.

 

그는 베트남에서  '루완'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둘은 최근에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단계 성장시켜 놓은 박항서 감독으로 시작해서 박지성, 손흥민, 또한 K 리그에서 뛰었던 쯔엉  축구 이야기로 대화의 물꼬를 텄다. 루완은 여전히 아시아 축구의 최강은 한국이라며 엄지를 추켜세웠고, 한국처럼 월드컵에 진출하는 것이 자신을 비롯한 베트남인들의 소원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인들이 축구를 정말 사랑한다는 느낌을 물씬 받은 주인은  꿈은 조만간 현실이  것이라고 루완을 격려했다

 

루완은 한국말을  잘했다. 약간 어눌하긴 했지만, 일상적인 대화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는 수준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주인은 루완에게 쌀국수 좋아한다는 아주 진부한 얘기를 했는데, 루완은 굉장히 반가워하며 자신은 돼지고기가 들어간 자박자박한 김치찌개를 좋아한다고 화답해주었다. 그러다  나라의 인구가  명인지, 영토는 얼마나 큰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 가장 높은 산의 이름은 무엇이고 얼마나 높은지, 어떤 종교를 사람들이 주로 믿고 있는지, '사회과부도' 책에 나올 법한 수치들을 서로 물었다. 이야기가 길어지다 보니 둘은 중앙도서관 1층에 있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둘은 아이스 카페라떼  잔을 시키고 동그란 원형 탁상을 중간에 두고 앉았다. 루완은 머그컵에 담긴 커피를 보면서 한국은 커피가 너무 비싼  같다고 이야기했다. 베트남에서는 한잔에 500원에서 1000원이면 맛있는 아이스커피를 어디서나 마실  있다고 말하면서 아무리 양국의 물가 차이를 생각해도 너무 비싼  같다고 토로했다. 덧붙여 루완은 자신의 나라가 세계에서  번째로 커피를 많이 생산한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주인이 베트남 커피를 좋아한다고 말하자 루완은 다음에 만날  본국에서 가져온 커피  나눠주겠다고 했다. 커피를 좋아하는 주인은 굉장히 기뻐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서로 전화번호를 교환하던 중에, 주인은 빨간색 배경에  노란 별이 중간에 있는 베트남 국기가 문득 떠올랐는지, 베트남 국기는 어떤 의미가 있냐고 물어봤다. 루완은 빨강은 혁명의 피와 조국의 정신을 나타내고, 노란 별은 노동자, 농민, 지식인, 청년, 군인의 단결을 의미한다고 알려주었다. 루완도 평소에 태극기에 대해서 궁금했는지 주인에게 물었다. 주인은 멈칫하더니  모른다고 이야기하면서, 우주의 어떤 질서에 대해서 나타낸다고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 없이 말했다. 외국인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던 것이 민망스러웠는지, 주인은 한국인들 대부분은 태극기를 어떻게 그리는지  모르고 의미도  모른다고 둘러댔다. 루완은 웃으며 자신이 나중에 찾아보겠다고 이야기한  다음 만남을 약속하고 강의실로 떠났다. 주인도 남은 커피를 단번에 넘긴  가방을 메고 자취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돌아오는 길에 주인은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있었던 OHP 사건과 루완과의 만남에 대해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했다. 주인은 새로운 외국 친구를 사귄 것이  신나 보였다. 그런데 자취방에 도착했을 때쯤 갑자기 주인의 얼굴이 살짝 붉게 변했다. 혼잣말로 “ 태극기, 태극기.” 것으로 보아 태극기에 대해 무지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던  같았다. 자신에게 살짝 실망한  같기도 했고,  모든 한국인을 태극기에 대해 무지하다고 일반화시킨 것에 대해 죄스러움을 느낀  같기도 했다

 

(제 3화에서 이어서...)

 

 

물생은 제 창작물이니 절대 마음대로 도용하지 마시고, 이곳에서만 봐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곳에 링크를 걸어서 소개하는 것은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