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2018년 12월 4일에 이 책에 대해 쓴 독후감입니다.
"까톡, 까톡."
아는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이번 주말에 시간 있으면 밥 한 끼 하자고 말이다. 선뜻 “그러자.”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만날 때마다 끝없이 늘어놓는 직장과 주변인들에 대한 불평과 투정을 들을 생각을 하니 벌써 지친다. 그러나 거절하면 이 친구가 상처를 받을 것 같아서 반가운 듯 만나자고 회신한다. 약속 날짜가 다가올수록 약속이 혹시나 취소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다. 그날은 으레 찾아왔고 최대한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려고 노력한다. 흡혈귀에게 물린 듯 내 에너지는 점점 바닥으로 향한다. 모터 달린 듯 움직이는 저 입에 재갈을 물리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라고 세게 조언해주고 싶다. 하지만 상처받을까 봐 그저 듣는다. 수 시간이 흐른 후 드디어 헤어졌다. 전원 OFF. 방전.
부모님이 물려주신 순하게 생긴 외모와 친절한 성격 덕분에 나에게는 이런 관계가 상당히 많다. 밝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보다는 조금은 어둡고 무거운 사람들이 나를 많이 찾는다. 만나고 나면 내 에너지는 위치 이동을 해서 그들에게 옮겨 가 있고,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이제는 많이 지쳤다.
이런 상황에서 김윤나 작가의 <말그릇>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이 말에 관한 것임을 알았을 때 사실 구미가 당기지는 않았다. 말에 대한 책은 이미 시중에 많으므로, 굳이 이 책을 읽어야 할 당위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표지만 보고 판단하기엔 책을 쓰신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프롤로그와 목차를 펼쳐 보았다. 찬찬히 읽어가는데 말에 대한 기존의 책들과는 조금 다른 관점과 논리가 신선함을 주었고 동시에 호기심을 유발했다.
이 책은 말을 잘하려면 우선 건강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함을 피력한다.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맺힐 수 있다는 것이다. 말과 관련된 기존의 책들이 화자의‘조리, 논리’에 초점을 맞췄던 것과는 달리 저자는 ‘인격’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가 제목으로 삼은 ‘말그릇’은 바로 우리의 내면으로 말을 담는 그릇이다. 사람이 각기 살아온 인생이 다르듯, 각 사람의 말그릇도 다른 특성과 형태를 지니고 있다. 크고 깊고 넓은 말그릇을 소유한 사람들은 더 많은 사람을 끌어안을 수 있다. 더 다양한 사람과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의 말그릇이 너무 작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서로 상처 주고, 또 쉽게 상처 받는다. 그러다 보니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저자는 말그릇을 건강하게 키우려면, 먼저 자신의 말그릇 상태를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먼저 자신의 내면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감정, 공식, 습관을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을 제안한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여러 고정관념 및 좋지 않은 습관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왜 특정 상황에서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는지와 고정관념들과 습관들이 생긴 배경을 살펴보면, 말그릇의 성장을 저해하고 있었던 근본적 원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감정, 공식, 습관을 이해했다면, 비로소 자신과 어느 정도 친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자신과 통(通)한 사람이어야 다른 사람들과도 진정으로 통할 수 있다.
저자는 말그릇이 큰 사람에게서 두 가지 공통된 능력을 발견했다. 바로 경청과 질문이다. 그들은 대화를 나눌 때 말을 많이 하기 보다는 상대방과 상대방의 세계를 알기 위해 관심 어린 질문을 한다. 또한, 상대방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그들의 말을 편견 없이 듣는다. 심판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학습자의 태도로 질문하고 듣는다. 상대방의 감정, 공식, 습관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말그릇이 큰 사람을 만나고 나면 힘을 얻게 되고, 그 사람을 또 만나고 싶어진다. 자연스럽게 말그릇이 큰 사람의 인간관계는 점점 풍성해지고 깊어진다. 반면 말그릇이 작은 사람은 점점 외로워진다. 저자는 독자들이 서툰 말로 인해 외로워지지 않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311 페이지로 구성된 이 책을 통해 내 감정은 많은 경우에 숨겨져 있었고, 적지 않은 편견과 좋지 않은 말 습관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생각한 것만큼 나의 말그릇이 성숙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어 사뭇 놀랐다. 그동안 잘 듣는 ‘척’하고 잘 공감하는 ‘척’하는 기술은 있었지만, 진심으로 상대에게 관심을 가지고 알아가려는 마음은 부족했다. 상대방으로부터 뭔가를 배우려는 마음보다는 평가하려는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 때가 많았다. 이것이 나의 가장 큰 문제였다. 그리고 내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아 마음이 갑갑할 때가 참 많았다. 항상 좋은 감정만 표현하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있는 슬픔, 외로움 및 어려움을 알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말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제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조금 보이는 것 같다. 예전에 재밌게 본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한 장면처럼 ‘기쁨’이 내 마음의 운전대를 잡아야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분노’가 주도권을 차지해야 할 때도 있고, ‘슬픔’이 일해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비로소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때 나는 자연스러운 옷을 입게 될 것이고, 그 모습을 사람들도 더 받아들이기 쉬울 것이다. XL 사이즈의 옷을 입어야 하는 내가 M을 입는다면 나도 몸에 찡겨 답답하고 보는 사람도 불편하지 않겠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책 <수사학>에서 누군가를 설득할 때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가 중요하다고 했다. 여기서 로고스는 논리, 파토스는 감동, 그리고 에토스는 말하는 사람의 인격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세 가지 중에서 에토스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다. 즉, 같은 말이라도 누가 말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논리가 살짝 떨어지고, 이야기가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더라도, 그간의 행실을 봤을 때 믿을 만한 사람이 말하면 듣는다는 것이다. 건강한 에토스, 건강한 말그릇을 소유한 인간이 되고 싶다. 넓은 말그릇을 가진 사람인 ‘척’하는 것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크지 않더라도 뜨거운 여름날 단 몇 사람이라도 제대로 쉬게 해줄 수 있는 나무가 되고 싶다. 건강한 내면이 장착되어 나도 자유를 느끼고, 나를 만나는 이도 자유를 느낄 수 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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