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06 23:22:23

정말 오랜만에 가족 휴가를 떠났다. 부모님과 여동생 교희와 함께 간 가족여행은 중학교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이번에는 교희와 나 모두 결혼하고 각각 애까지 하나씩 낳은 상태에서 여행을 떠났다. 아빠, 엄마는 자연스럽게 로아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가언이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되어버렸다. 오랜만에 떠나는 가족여행이라 매우 기대가 되었다.



▶첫째 날


대관령을 지나던 중 잠시 휴식을 위해 졸음쉼터에 내렸다. 기대치 못한 아주 멋진 작은 숲을 발견했다. 들어가는 순간 느껴지는 피톤치드의 상쾌함. 우연하게 발견했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서라도 방문할만한 가치가 있는 장소였다.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좋은 사진을 건져서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천안에서 출발한 교희 가정과 제천에서 출발한 부모님과 우리 가정은 교희가 추천한  장칼국수집 '형제칼국수' 앞에서 만났다. 맛집임을 인증해주듯 상당히 긴 줄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마침 강릉으로 여행오신 고모와 고모부도 합류했다. 밥을 먹기 위해 한 시간이나 줄을 서서 기다린 것은 생전 처음이었던 것 같다. 기나긴 기다림 끝에 들어가서 덜 매운맛의 장칼국수를 8개시켰다. 조금 매운맛도 아닌 덜 매운맛은 어느 정도 매운 맛일까 궁금해하며 음식을 기다렸다.  


왼쪽부터 매제, 가언, 아내, 로아, 나, 아빠, 고모, 엄마, 고모부



상에 올라온 장칼국수는 고추장 베이스의 걸쭉한 국물에 수타 칼국수면이 조화되어 있는 강원도 로컬 푸드였다. 맛보는 순간 정선에 계시는 할머니가 해주셨던 맛과 너무나 똑같아서 깜짝 놀랐다. 부모님을 비롯한 고모도 이거 우리 엄마 맛인데 하며 신기해하셨다. 우리 할머니가 장칼국수 가게 차리셨어도 대박 났을 것 같다. 맛있게 먹고난 후 우리는 아빠가 경포해수욕장 옆에 예약해놓은 호텔로 향했다. 아가들로 인해 가져온 짐이 꽤 많았다.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아가들끼리 친해지는 시간을 갖게 했다. 우리 딸 로아는 올해 5월에, 교희네 아들 가언이는 올해 1월에 태어났다. 가언이는 어느덧 혼자 젓병을 들고 먹는다. 좀 더 크면 둘이 어떻게 놀지 기대가 된다. 


로아와 가언이. 왼쪽에서 찍었더니 로아가 너무 크게 나왔다. 실제로는 가언이가 훨씬 크다.


휴가철 피크기간이라 그런지 해수욕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파도가 높아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입수가 금지되었었다고 강릉에 일찍 도착한 고모는 말씀하셨다. 다행히 우리가 갔을 때는 입수가 허용되었다. 높은 파도 덕에 파도를 타는 재미가 쏠쏠했다. 파도에 밀려난 사람들과 부딪히기를 반복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런 곳에 가면 우리 아빠가 가장 즐겁게 노시는 것 같다. 애기들은 파라솔 아래에서 엄마, 아빠를 기다리며 모래 위에서 뒹굴었고, 우리는 번갈아가면서 해수욕을 즐겼다. 



매제, 엄마, 교희, 고모


조카 가언이 안고, 배 내밀고...


해수욕을 마치고 온몸에 달라붙어있는 모래와 짠기운을 제거한 후, 저녁을 먹으러 생선구이집 '산마을'에 갔다. 동생 교희가 예전에 강릉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여기저기 아는 곳이 많았다. 이 식당은 교희 친구의 어머님이 하시는 곳이었다. 생선구이 정식을 주문했는데, 알찬 구성에 오~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통통한 생선들은 곧 뼈만 앙상히 남은 가시고기가 되어버렸다.  



저녁식사 후 고모와 고모부는 정선에 있는 할아버지댁에 가셨다. 우리는 숙소에 돌아온 후 아이들을 재우고 다시 나가려고 했지만 다들 피곤했는지 무거워진 눈꺼풀을 드는 것을 포기했다. 내가 가장 잠에 빨리 든 것 같다. 애기 데리고 하는 첫 여행이라 은근 피곤했었나보다. 



둘째 날


두번째 날 아침은 '고복순할머니 순두부'로 시작했다. 이곳은 강릉현지분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우리는 두부찌개와 순두부를 시켜서 먹었다. 두부찌개에는 김치가 살짝 들어가서인지 굉장히 시원한 맛이 났고, 순두부는 매우 연하고 고소했다. 강릉에 오면 다시 오고 싶을 정도로 건강하면서도 정말 맛있었다. 이유식을 시작한 가언이는 6개월 인생 처음으로 순두부를 맛보았고, 바로 중독되어버렸다. 결국 가언이 혼자 한그릇을 비워버렸다. 아직 100일이 안된 로아는 아직 모유수유만 해서 맛볼 기회가 없었다. 다음에 또 오게 되면 한번 먹여봐야겠다. 




만족스러운 아침 식사 후에 우리는 커피를 한잔하기 위해 '보헤미안 박이추 커피공장'에 갔다. 바다를 옆에 두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었다. 수요미식회에도 나온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번호표를 받고 대기를 해야만 했다. 평소에도 대기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따로 대기를 위한 장소가 있었다. 약 15분정도 기다린 후에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나는 카페라떼를 시켜서 마셨는데 커피가 굉장히 진했다. 또한 쓴맛과 신맛이 공존했다. 수유중이라 그동안 커피를 참았던 아내도 이런 곳까지 와서 마시지 않으면 안된다며 한 잔 주문했다. (아내는 이때 이후로 커피를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수유중에도 하루에 한잔 정도는 괜찮은 것 같다.)  


나와 닮아서 형제지간으로 오해받기도 하는 매제. 


아빠와 가언이.


한창 수다를 떨다보니 점심시간이었다. 우리는 이번에도 강원도 토속음식으로 메뉴를 선정했다. 생생정보통에 방영되었던 '포남사골옹심이' 식당으로 향했다. 아내가 감자떡, 감자옹심이와 같은 쫀득쫀득한 식감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진한 사골 육수와 쫄깃한 옹심이는 상당히 잘 어울렸고, 건강한 포만감을 주었다. 국물은 만두국의 국물맛과 비슷했다. 



숙소로 돌아와 교희와 매제는 가언이를 데리고 호텔에서 운영하는 야외수영장에 갔다. 가언이는 피곤했는지 튜브 위에서 놀다가 스르륵 잠에 들었다고 한다. 엄마도 역시 피곤하셨는지 숙소에 남아 낮잠을 주무셨고, 아빠와 우리 가정은 수영장에서 놀고 있던 교희네 가정을 데리고 다시 한번 경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어제보다는 사람이 적어서 파도를 타며 서로 엉킬 일은 거의 없었다. 체감상 물이 더 깊어진 것 같았다. 조금만 들어가도 목까지 물이 찼다. 


가언이는 대박이를 참 많이 닮은 것 같다.


로아는 가언이가 수영하는 걸 구경하며 잠들었다.


교희와 매제.


출출해진 우리는 오늘의 마지막 식사를 무엇을 먹을지 고민했다. 밤도깨비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엄지네 포장마차'의 꼬막비빔밥을 먹고 싶어 갔는데, 최소 2시간은 기다려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메뉴를 바꿔 곱창집인 '교동곱창'으로 차를 몰았다. 아쉽게도 여기도 만석이었고, 이미 물량이 다 떨어진 상태였다. 그냥 아무데나 들어가서 먹을까 하다가 다시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소곱창 맛집으로 알려진 '용지곱창'에 전화를 걸어보았고, 자리가 비어있다는 소식에 다시한번 운전대를 잡았다. 곱창집에 어린 아가들이 방문한 것이 신기했는지 손님들이 아가들에게 눈을 떼지 못했고, 나는 곱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곱창전골 말고 이렇게 구워먹는 것은 처음이었다. 곱창을 순식간에 헤치운 후에 소갈비로 식사를 마무리했다.  



강릉에서의 마지막 밤은 안목해변의 카페거리에서 보내기로 했다. 안목해변에는 예전에 해변가에 횟집이 쭉 줄지어있었던 것처럼 카페가 들어서 있었다. 도착하니 해변 여기저기서 삼삼오오 불꽃놀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부모님은 카페 가는 것이 그렇게 익숙하시진 않으신데, 우리 때문에 하루에 두 번씩이나 카페에 가게 되셨다. 우리는 수제 케익이 맛있다는 '엘빈'에 가서 조각케익 세 조각을 시켜 먹었다. 살이 뒤룩뒤룩 찌는 것이 느껴졌다. 여행 끝나면 다시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숙소로 돌아왔고, 이것으로 여행의 둘째날도 마쳤다. 


다정한 엄마와 아빠.



셋째 날


갑자기 아내가 나를 깨웠다. 시간은 새벽 5시. 일출을 보러 가자는 것이었다. 원망스러웠다. 영 눈이 떠지지 않았다. 아내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쪼리를 차며 숙소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아내에 대한 원망은 곧 감사로 바뀌었다. 떠오르는 태양이 발산하는 햇빛과 그라데이션을 만들어낸 하늘과 일렁이는 바닷물의 조화는 나를 흥분시켰다. 괜시리 가슴이 뭉클해졌다. 역시 아내말은 잘 듣고 봐야한다. 




마지막 날 아침은 호텔의 조식부페로 해결했다. 한국에서 호텔조식을 먹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빵쪼가리와 햄만 있는 외국 호텔과 달리 불고기와 생선구이, 밥이 추가로 준비되어 있어서 꽤 만족스러웠다. 정들었던 '라카이 샌드파인'을 떠나기 전 매제가 삼각대를 설치해 타이머로 단체 사진을 몇장 찍었다. 따가운 햇살로 눈을 뜨기 힘들어 역광, 측면광인 스팟들을 찾아다녔다. 단체사진을 끝으로 강릉 여행도 끝맺었다. 


 


총평


내가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강원도 태백과 동해에 살았었고, 또 할아버지 댁이 정선에 있어서 강릉은 참 자주 지나가고 갔던 곳인데 이렇게 여행을 간 것은 처음이었다. 푸른 동해 바다, 싱싱한 해산물과 강원도 토속음식들, 이번에 방문하지는 않았지만 오죽헌, 선교장, 허난설헌생가와 같은 문화재들은 강릉을 누구나 가고 싶은 도시로 만들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다음은 문화재 중심으로 방문해보고 싶다. 


맛있는 음식들, 바다, 맑은 공기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아빠, 엄마, 교희, 매제, 가언이, 아내, 로아와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주님께서 이처럼 귀한 가정을 주신 것에 감사하다. 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또한 더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서 노력해야겠다. 


조카 가언아! 딸 로아야! 주님의 자녀로 아름답게 자라길 축복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