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내가 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야

2019년 8월 31일에 작성한 독후감이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프레임을 통해서 채색되고 왜곡된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프레임으로 인한 이러한 마음의 한계에 직면하게 될 때 경험하게 되는 절대 겸손, 나는 이것이 지혜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저자의 이 말에 100퍼센트 동의한다. 우리는 모두 자신은 매우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매우 편협하고 주관적인 사람이라고 치부한다. 반면 저자는 완벽하게 객관적인 사람, 또한 모든 실상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단정짓는다. 인간에게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프레임, 즉 세계관,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본다. 세계관과 관점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 신앙, 학습한 사상에 의해 차츰 만들어진다. 완벽하게 동일한 인생의 여정을 걸어온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어쩌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프레임은 다 다르다고 볼 수도 있다. 자신의 세계관과 상당히 큰 교집합을 가진 사람들도 주변에 꽤 있지만, 반면 상당히 적은 교집합을 가진 사람들도 종종 만나게 된다. 

똑같은 일을 겪었는데도 다른 해석이 나오는 것을 보면 당혹스럽기 마련이다. 그 원인은 바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프레임의 차이다. 똑같은 장면을 찍더라도 사진사가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것과 같은 원리다. 

자, 모든 사람이 각자의 프레임, 세계관, 관점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을 이제 모두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좀 더 나은 세계관이라는 것은 존재할까?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에 빠져 있는 사람은 "더 나은 세계관은 없어. 모두 다르고 다 의미가 있어."라고 주장하겠지만, 나는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완벽한 세계관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좀 더 나은 세계관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도 어떤 관점에 따라 찍느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매우 훌륭한 작품이 될 수도 있고, 별 가치 없는 수 많은 사진 중의 한 장으로 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허무주의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그저 우연일 뿐이야.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무의미하고,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도 부질없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것도 허무한 일일 뿐이야." 이런 세계관을 가진 사람은 인생을 살아갈 이유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결과적으로 게으르고 방탕하게 쾌락만을 추구하며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반면 나와 같이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존재야.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이땅에 나를 보내신 것이야. 이 세상에는 분명히 선과 악이 존재해. 나를 비롯해 모든 인간들은 죄성을 가진 연약한 존재야. 하나님의 말씀과 양심에 순종하지 않으면 언제든 나와 다른 사람을 파멸시키며 살 수 있어. 반면 순종하면 나와 이웃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삶을 살 수 있어." 

전자와 후자 중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자가 더 의미있는 삶을 살아갈까?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여러 관점과 각도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어쩌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 공간, 능력의 한계를 가지는 존재다. 좀 더 의미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좀 더 나은 세계관들을 취해야 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세계관 중에 어떤 세계관들은 특히 세상에 대해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나는 그것이 바로 기독교적 세계관이라고 생각한다. "신의 존재. 인간의 죄성." 이 두 가지를 인정하지 않고 세계를 바라보면 너무나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인정하고 세상을 바라보면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이 세계관이라는 것은 생물, 즉 살아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계속해서 다듬어지다가 가끔은 큰 전환점을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독후감을 써오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불과 1년전에 쓴 독후감의 내용에 나 스스로가 공감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분명 그때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느꼈는데도 말이다. 우리의 이러한 변덕스러움을 인정하자. 또한 우리의 한계를 받아들이자. 그럴 때만이 나와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도 받아들일 수 있다. 

댓글()